봄이 어귀즈음에서 나는 골목을 자주 방황했다. 그러다 어느 나무가지를 마주쳤는데, 그는 봄에 대한 그간의 내 생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나는 봄이 항상 '리셋'이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처음부터 새롭게, 여리고 말랑말랑하게 시작하는 거라고 줄곧 그리 믿어왔다. 또 한번의 봄을 맞는 나무가지는 반짝 빛나는 맨 처음의 초록을 달고 늠름하게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초록이 눈이 부셔 자세히 들여다 보았을 때, 초록이 지난 겨울을 그대로 품은 채라는 걸 알았다. 초록의 뿌리가 긴 겨울이었다. 춥고 긴 겨울을 지낸 나뭇가지에 덧대 초록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좀 당혹스럽고 놀랐다. 겨울 다음에 봄이듯이, 나무도 겨울에 이어 봄을 덧대는데 왜 그간 나는 한번도 나무의 겨울을 이해하려들지 않았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지금은 힘들어도 너의 미래는 빛날거야, 같은 하나도 가닿지도 않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겨울의 시간이 있고, 그 겨울에 봄을 덧댈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겨울 다음엔 봄이라고 삶이 그리 공식을 정해두었으니까. 겨울이 좋다면 영원한 겨울 속에 머무르면 될 일이고, 겨울이 싫다면 겨울 속에 뿌리를 내리고 봄을 향해 갈 일이다. 겨울 속에 충분히 머무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야 봄이 자신에게 필요한 때를 안다. 겨울을 벗어날 때를 안다.
나는 내 삶에 들어있는 겨울이 싫었다. 겨울을 혐오하고 원망하고 저주했다. 싫어하면서도 줄곧 겨울 속에 머물렀다. 겨울 속에서 봄을 덧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겨울의 시간에 대해 화만 냈지, 좀처럼 봄으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실은 화를 내고 원망하고 싶었기 때문에 겨울을 줄곧 붙들고 있었게 아니었나.
한장 한장 쌓아올린 꽃잎으로 예까지 왔다. 아무런 의미를 기대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내게 벅찬 것으로 다가왔다. 겨울에 어설프게 봄을 덧대려 애쓰면서 한발 한발 겨우 걸어왔다. 겨울과 봄 사이를 얼기설기 감칠질하며 예까지 비로소 왔다. 오늘 문득 케이크를 마주하니 누군가 내게
나는 지금 봄이다.
봄 속에 무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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