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년전쯤에 사랑하였던 남자는
'일과 사랑 중에 나는 일이다. 사랑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지만 일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 는 처참한 말로 내 속을 뒤집어 놓더니
그 뒤로 얼마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거기에 부수입처럼 딸려오는 얼마나 예쁜 여자를 사귀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는 일과 사랑 중에 아무래도 사랑인 것 같다.
물론 이별하고 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눈밑이 시커먼 보랏빛이 되도록 앓아눕다가, 너 아니면 안된다고 다리 위에 올라가서 난리부릴 정도의 '사랑밖에 난 몰라' 유형은 아니지만 - 그렇다고 또 아닌건 아닌게, 회사건 공원이건 길거리건 엉엉 우는통에 누가봐도 '나 이별했어요' 하고 광고하고 다니는 유형이긴 하고- 늘 사랑이 무너지면 내 삶의 다른 모든 요소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리고 가장 타격을 받는게 역시 일. 이상하게도 내 삶에서 일과 사랑은 꼭 한 세트처럼 묶여있어서 어느 하나가 삐걱대면 나머지도 금세 덩달아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오년전쯤에 사랑하였던 남자와 헤어질 때, 나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인턴. 그 남자와 헤어질 즈음 맞춤해서 마침 인턴기간도 끝나고해서 더 다녀보겠냐는 제안을 거절하고 다른 도시로 도망가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철없는 짓이었는데, 어렸으니까...로 위안을 하며. 아무튼 그러다가 나름의 연애를 하고, 그 연애가 끝날무렵 회사에서도 일이 뻥하고 터져서 나는 또 일과 사랑을 동시에 놔버렸다. 그리고 올해 또.
비가 찔끔찔끔 오는데 회사 소식을 듣고 걸으면서 서서히 열이 차오르더니 '나는 왜! 일도 사랑도 이렇게 뭐 하나 제대로 안정적인게 없는건데! 내가 더이상 얼마나 노력을 해야 되는건데! 뭘 얼마나 더! 아오 씨발!' 중얼중얼중얼중얼. 결국에는 참았던 욕도 터지고 눈물도 터진다. 아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