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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기다리는 마음

 

 

 

 

 

벌써 12월이다. 새해가 딱 3주가 남았다. 크리스마스에 무얼 할거냐는 물음에 뭔 크리스마스, 싶다가 달력을 들여다보곤 새삼 놀랐다. 새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길 바라면서 손을 꼽은 적이 크게 두 번 있다. 서울에 올라온 첫 해,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 전자렌지 앞에 선 3분이 몹시도 지루하고 긴 것처럼, 목적이 있는 시간은 왜이리 더디갈까. 여름과 가을에 걸쳐 당신을 사랑했다. 매일의 순간에 나를 온통 쪼개넣던 그 시간들을 서늘하게 추려보면 채 몇달 되지 않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는데 왜 그리 길고 더디게 느껴졌던걸까나.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해 나는 개지랄을 떨었나. 전자렌지 앞에서의 3분처럼. 고 짧은걸 못견뎌 쿵쾅댔었나, 싶다가도 어느 작가가 말한 그 유명한 '지랄총량의 법칙' 처럼 내재된 개지랄은 언제든 발사되었을 것이야.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 (이렇게 합리화하지 않고서야 내 바보스러움을 견뎌낼 재간이 없기에.)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고 목에서 불을 피워올리는 것처럼 매캐한 그을음 냄새가 났다. 감기 같은거겠지. 겨울이니까. 다시 털썩 누웠다. 천계영의 <좋아하면 울리는>이란 웹툰을 봤다. 나는 이 웹툰을 좋아한다. 오늘은 좋알람 개발자인 천덕구가 어플의 새로운 기능을 발표하는 날. 이름하야 '당신을 좋아할 사람'. 당신 주변에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당신을 좋아해줄 사람의 리스트를 제공한다. 더 이상 사랑 때문에 아플 필요가 없다. 마음 앞에 안달날 필요가 없다. '안전한' 사랑을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에 두터운 뽁뽁이를 족히 스무번은 돌려감은, 그런 다칠일 없는 안온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하는 것이다. 짝사랑이 없는 시대.

 

 

 

 

 

 

 

좋아해도 되는 사람.

사랑의 효율.

 

 

사랑해도 괜찮은 사람.

 

 

사랑해도 괜찮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 갓짜낸 순수과즙 일백퍼센트의 행복감만 안겨주는 사람?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사람? 책상에 놓여있던 책을 펼쳤다. 당신을 사랑하는 어느 날, 책 한 귀퉁이에 메모해 놓은 것이다.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을 주고 받았다. 우리는 상처를 주고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했다. 좋아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하나도 마음에 두지 않고서, 설령 그런 생각이 일면 저 마음 구석으로 힘껏 밀어버리고서 사랑을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아직 어려서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거냐 물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실재없는 사랑이라 가능하다 말했다. 그런 말들을 힘껏 밀어버리고서 당신을 사랑했다.

 

 

 

목적이 있는 마음.

목적이 있는 시간.

 

 

 

목적이 깃들면 느리고 더디고 힘에 부친다. 내 목적이 당신이었던 때가 있었다. 내 시간은 온통 당신을 기다리고 내 마음은 온통 당신을 그리워했다. 목적이 지워진 마음과 시간은 편할 줄 알았는데,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혼자 방에 앉아 엉엉엉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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