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전의 딱 어제. 북한산에 올랐고 내려와서 막걸리를 마셨으며 나는 그길로 집에 돌아와 혼곤한 잠에 빠졌었더랬다.
왠만해선 평일 밤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와 본 일이 없다. 늘 바빴다. 퇴근 후에도 뭔가를 계속 했다. '해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뭉텅 저녁이 생겨버렸다. 원래는 또 마감에 쫓기느라 뭐라도 다급하게 써댈 시간인데, (다행히) 잡지 리뉴얼로 모든 일정이 스톱되었고 퇴근 후 해오던 이런저런 일들도 나의 사정이 아닌 단체나 기관의 사정에 의해 역시 스톱되었다. 그래서 몇 년만에 온전한 저녁 시간을 갖게 된 셈인데, 첫 날의 간단한 소회를 말하자면 저녁이 이렇게 긴 줄 몰랐다.
칼퇴를 했다. 회사 사람 하나랑 마주쳤는데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으세요?' 라는 인사를 들었다. 표정요? 제 표정이 어때서요. 어두운 하늘에 비가 다시금 후두둑 쏟아져 우산을 펼쳐들고 바삐 걸어 집으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엎드려 책을 폈다. 페이지마다 감탄했으나 어느 무렵 졸고 있었다. 여섯 시간 정도를 자고 나면 더 이상은 못 자고 눈을 번쩍 뜨기 때문에, 새벽에 번쩍 깨기 싫어 졸음을 쫓으려 다른 책을 폈다. 저녁 시간이 뭉텅 주어지니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영화나 보러 갈까 싶기도 했지만 귀찮다 싶다. 요리나 할까 싶지만 그것도 오늘은 귀찮고, 요즘 유행한다는 드라마나 오랜만에 볼까 싶지만 다운받아놓고 회사에 두고와서 그것도 실패. 나의 게으름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인상적인 두 개 정도만 꼽는다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일명 '뽁뽁이'라 부르는 창문 비닐을 사놓고는 다음해 봄이 올때까지 못 붙이다가, 여름즈음해서 이사를 할 때 이사 비닐로 썼다는 것. 다른 또 하나는 짜파게티 끓이기가 몹시 귀찮아서 부셔 먹었는데 그 맛은 정말 상상초월이다. 혀 안에 재를 뿌리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끄덕끄덕 줄기차게 졸음이 밀려오고 있다. 내일 여섯시까지 푹 잘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눕겠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