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가는 기차 안.
세상에 부러운 사람 많고 부러울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질투로 속이 뒤틀렸다. 속된 말로 '배알이 꼴린다'고들 하지.
1. 남자 이름을 가진 여자
2. 카피라이터
3. 자기 이름으로 낸 책
4. 음악 가까이 있는 삶
5. 좋은 스승
6. 사는 동네 (우리집 옆동네)
*
1. 김민철
나는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늠할 수 없는 이름을 좋아하며,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남자에게 붙은 여성스러운 이름과 여자에게 붙은 지극히 남성스런 이름을 좋아한다. 늘 그런 이름을 갈망했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에 김철수 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 여고를 나왔으니 당연히 여자 - 철수라는 이름과는 도통 매치가 하나도 되지 않는, 얼굴이 하얗고 눈이 자그마하고 웃을때 그 눈에 맺히는 반달이 예쁜 자그마하고 부산스런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이름이 참 예쁘고 좋았다. 철수야, 하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아마 개명을 했겠지. 철수는 철수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이름만으로 판가름되지 못하는 것을 좋아한다. 상대방이 이름을 들었을 때 혼자서 지레짐작해버리는 그 세계를 무참히 짓밟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그런 이름 앞에서는 어쩌지 못할 매혹을 깊게도 느꼈다. 내 이름은 정확한, 여자이름이라 늘 개명의 유혹에 시달렸고 지금도 그렇지만 바꿀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들도 좋아하니까. 아무튼 저자 이름은 김민철이다. 부럽다. 부러워 미치겠다.
2. 카피라이터
나는 첫 사회생활을 카피라이터로 시작했다. 지금도 언제나 마음 한편에 '섹시하고 독보적인' 카피라이터의 꿈을 키운다. 물론 게으르기 때문에 마음 한편을 비출 여유도 잘 없다가, 아주 아주 여유가 많이 생겨서 잡생각들이 슬금슬금 냄새를 피워올리면 그 냄새와 함께, 어딘가에 처박혀있던 꿈이 슬쩍 고개를 치켜든다. 나 여기있어 이년아, 하고.
나는 그러니까 대기업, 같은 것의 카피라이터 인턴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정신과 의욕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시켜만주면 섹시하고 죽이게 쓸 수 있는데, 늘 똑같은 가구 카피만 써댔다. 이 의자는 어쩌고 저쩌고 이 책상은 어쩌고 저쩌고. 어리고 여리고 예민하고 무딘 사회 병아리. 섹시하고 죽이는 카피를 못 써서 늘 욕구 불만. 게다가 시키는 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중국 관련 업무도 동시에 맡았고, 경영 전공을 했다는 이유로 마케팅 기획안을 제출하라는 과장의 지시도 있었다. 중구난방이었다. 회사가 후져서 이렇게 체계가 없는거라고 생각했다. 늘 불만에 차있었고 언제나 일을 대충했고 언제나 탈출하고 싶었다. 금방 알았다. 모든 회사에서는 모든 일을 시키고, 시키는 일은 모두 잘 해내야한다는 것을. 섹시하고 죽이는 카피는 섹시하고 죽이는 시간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후지고 체계없는 와중에 나온다는 것을. 후지고 체계없는 와중에 섹시하고 죽이게 써내야 진짜 실력자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
3. 책
나의 그럴싸한 핑계 두 가지.
⓵ 기회가 되면
⓶ 때가 되면
⓵⓶ 모두 본인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
4. 음악 가까이
내가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기꺼이 한 게 음악 듣는 일인데, 의외로 주변에는 음악 나눌 사람이 없다는게 아쉽다. 저자의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 저자의 남편은 온갖 장르 음악의 매니아. 게으름을 피워도 기어코 음악의 물가로 인도하는 어떤 사람, 내 주변엔 없나요.
5. 좋은 스승
돌이켜보면 좋은 스승은 있었으나 가까이 다가갈 숫기가 없었음이 문제.
6. 사는 동네
저자는 망원동에 산다. 역시 좋은 동네. 그러나 우리동네도 좋은 동네.
* 술 한잔 얻어마시고 싶다. 저 섹시하고 죽이게 쓰고 싶습니다! 중얼중얼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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