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는 어제, 분명히는 오늘 아침부터 지독하게 쌀국수가 먹고 싶었다. 무슨 한여름의 태풍이 11월에야 뒤늦게 몰려오는 양, 이틀내내 때려붓는 비를 보면서 '이런 날엔 쌀국수지.' 하고 중얼. 쌀국수를 주문하고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3분이 될까? 주문만하면 어디 쌀국수를 미리 몇 백 그릇이라도 말아놓는 양 금세 휙 하고 나온다. 그렇지만 그 간편한 속도에 반비례하게 쌀국수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결코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쌀국수 집, 특히 비오는 날의 쌀국수 집은 식사 때를 놓쳐 들어가도 붐비기 일쑤. 사람들이 쌀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날씨도 아랑곳않고 가게 바깥에 길게 줄지어 있다. 그러니 빨리 나오고, 빨리 먹고, 빨리 일어나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혼자 먹는 밥은 원래 빨리 먹게 되어있는데 쌀국수는 혼자 먹는 밥 본디의 불편함에 속도까지 더해 그 몇 배를 빨리 먹어야 한다. 이까지 생각하면 혼자 쌀국수 집에 들어가는 상상만으로도 절레절레 진절머리를 친다. 쌀국수는 너와 나의 넉넉한 그릇 두 개를 마주 놓고, 나의 취향대로 국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수를 수북하게 쌓은 뒤 숙주로 나머지 빈 공간을 메꾸고 '으아아아아' 하면서 넉살좋은 따듯함에 영혼을 반쯤 뿅 내주고 먹는 음식이란 말이지. 갓 나온 국수를 볼이 미어터지도록 한꺼번에 왕창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삼키는 것이 제맛이기 때문에, 예쁜 척 하며 먹을 겨를이 없기도해서 불편한 사람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대단한 끼니는 아니라서 굳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쌀국수를 먹자, 고 약속을 하기에는 애매한 메뉴. 그저 둘이 길을 걷다가 오슬오슬 날씨에 입맛과 생각이 동해서 '쌀국수나 한 그릇할까?' 하게 되거나, 퇴근길에 동료에게 '쌀국수나 먹고 갈래?' 하게 되는 우발적인 간절한 따끈함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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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영화를 드디어 보았다. 가장 중요한 앞장면을 뭉텅 짤라먹고 들어갔다. 젠장. 첫 문장을 놓치다니. 영화보러 가는 길에 비가 퍼부어 우산이 부러졌고, 부러진 우산을 잡고 낑낑대느라 늦어버린 것. 이 날씨에 신은 높은 굽도 한 몫 했겠지. 보는 내내 쌀국수가 간절한 영화였다. 스산하고 간간이 소름이 끼치기도 했지만, 그 기괴함에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자꾸만 오른손을 뻗어 누군가의 손을 쥐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그 손을 줄곧 쥔 채로 쌀국수 집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마주보고 고수를 듬뿍 올린 따뜻한 국물을 먹으면 그제서야 스산한 오늘 날씨와 기괴한 기분이 스르르 풀어지면서 '그 영화 어땠어?'라고 한마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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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를 집에서 만들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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