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사과를 곰실곰실 야들야들 잘 깎는다. 노련한 의사처럼 뾰족한 칼 끝으로, 멍들거나 벌레 먹은 부분을 섬세한 손길로 도려낼 줄도 안다. 그러다 문득 사과를 처음 깎아본 기억이 떠올랐다. 여덟살, 사과깎이 시험이 있었다. 한 명씩 선생님 앞으로 사과 한 알을 쥐고 나가면 선생님이 칼을 쥐어줬다. 선생님과 마주보고 앉아 사과를 깎아내야만 한다. 내 앞에 보미라는 애는 사과를 잘 깎았다. 얼굴은 사실 그렇게 이쁜 건 아니었는데 덩치도 제법 크고 하는 행동이나 말이 야물딱져서 선생님이 좋아하던 아이다. 반장이었나. 아무튼 보미가 완벽한 사과를 깎아내자 선생님은 보미를 칭찬하며 '보미는 사과도 잘 깎는다'며 예뻐했다. 의기양양한 보미를 뒤로 하고 사과를 쥐고 앞에 나가 선생님과 마주보고 앉았다. 선생님이 내 손에 칼 한자루를 들려줬다. 엄마가 하던대로 칼을 들고 가볍게 딱, 사과를 내리치면 사과 깎기의 시작일텐데 내가 한번 딱 내리치자 마자 선생님이 '지현이 너 처음깎니?' 라고 물었다. '...네'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엄마가 사과를 깎을때면 길게 길게 끊이지 말고 깎으라며, 옆에서 긴긴 사과 껍질을 응원하긴 했지만 한번도 손에 칼을 쥐어본 적은 없다.
가정시간. 중학교 2학년. 계란 지단 부치기 시험이 있었다. 계란을 아주 얇고 넓게 부친다음 칼로 종종종 가늘고 길게 썰어내면 만점. 계란이 팬에 눌러붙었다. 겨우 조각들을 수습해 퍼즐 맞추기엔 완성했으나, 문제는 이 퍼즐을 종종종 가늘고 아름답게 썰어내야만 한다는 것. 팬에 조각조각 떨어진 대륙처럼 아작난 계란들을 겨우 도마 위에서 화해 시켰다. 그리고... 그때는 '스크램블' 이란 존재를 몰랐지만, 그래 나는 시대를 앞서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선생님이 '이게 뭐냐!' 라고 혀를 끌끌차며 나에게 60점을 줬는데 '이건 스크램블입니다.' 라고 한마디를 못한게 아직도 한이 된다. 내가 우리반에서 계란을 제일 못 부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바느질도 빵점을 맞았다. 무슨 바느질에 그리 종류가 많은지. 홈질, 시침질, 감침질, 공그르기, 실기둥... 시치미를 때고 감추는게 시침질 감침질 아니던가요.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교련 시간에도, 전우 머리에 붕대를 이쁘게 매는 시험에서 빵점을 맞았다. 아니 전쟁통에 뭐라도 하나 동여매면 다행이지 뭔 이쁘게씩이나 한단 말인가. 이것들은 전쟁도 안 겪어본 주제에 붕대를 잘도 이쁘게, 빨리, 노련하게 감고 풀었다.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사과를 잘 깎는다. 계란 지단도 잘 부치며 왠만한 요리도 곧잘한다. 그러나 바느질은 끔찍하다. 붕대는 교련 시간 이후 잡을 일이 없었다. 잡고 싶지도 않다. 교육은 어린이의 싹수를 너무 일찍 알아보거나 너무 늦게 알아본다. 늘 그래서 교육이 문제다. 내버려두면 잘 하게 될 것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을. 권세현 선생님, 사과 한 번 깎아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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