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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엄마는 그것도 모리나?

엄마따라 장보러 집을 나섰는데 골목 반대편에서 한가족이 걸어오고 있다. 아빠는 멀찌감치 앞서서 걷고 여서,일곱살 되어보임직한 안경을 낀 여자아이는 엄마옆에 착 달라붙어 끝임없이 조잘대며 오고있다.

'엄마. 오천원에서 천오백원 빼면 얼만줄 아나?' 돈을 셈할수 있게 되어 여간 자랑스러운게 아닌가보다. 아이의 목소리가 해진 골목에 쩌렁쩌렁 울린다. 엄마는 사뭇 귀찮다. '몰라'. 세상 모든걸 다 알고있는 듯한 엄마도 모르는게 있다니! 아이는 더더욱 신이 나 목소리를 높인다. '엄마는 그것도 모리나?'. 요것이 은근히 엄마를 무시하자 엄마는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빽 소리를 지른다. '삼천 오백원 아이가!'. 아이가 발끈한다. 제가 이미 알고있는 정확한 답을 엄마라는 이유로 망가뜨리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것이다. 엄마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이럴수가. 아이가 엄마보다 더 큰 소리로 대답한다. '엄마는 그것도 모리나! 이천 오백원이다!' 아이의 앙칼진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그 순간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나는, 허공을 가르며 딸의 왼쪽 싸대기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엄마의 높이 치켜든 손을 본다. 가로등 밑에 서있던 그들이라 그 장면이 더욱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살과 살이 맞부딪히며 나는 경쾌한(또는 탄력있는) 파열음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지 않았는데 엄마의 손길을 피해 딸래미가 잽싸게 아빠 쪽으로 뛰어가며 '아빠! 오천원에서 천 오백원빼면 이천 오백원 맞제!!'를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느그엄마말고 우리엄마따라 장바구니 끌고 조용히 따라가면서 내가 중얼거린다. '까시나야, 엄마는 다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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