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김점선의 <10cm 예술>_ 점과 선이 만나'면'

내가 사람인 것이 고통스럽다. 이런 걸 맨 처음 느낀 것이 열 살쯤의 일이었다.
이가 썩어서 치과엘 다니면서 그렇게 느꼈다. 신경 죽이는 약 바른 솜을 꽉 깨물고 길을 걷고 있었다. 이빨은 커녕 손도 머리카락도 없는 게 헤엄도 잘 치고 날기도 하고 얼마나 신나게 꽥꽥거리며 잘 살고 있는가? 학교도 안 다니고 숙제도 평생 안해도 되고 치사하게 머리털 자르러 이발소 같은 데도 안 다니고, 오리가 부러웠다. 그때 길가에서 오리를 본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오리를 생각했을 뿐이었다. 여러 개의 조그만 뼈를 입속에 가득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동물은 오리보다도 훨씬 열등한 기분 나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치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경 치료를 받으면서, 그 고통 속에서 치과 의자에 파묻혀 있으면서 갑자기 오리로 변신해서 창밖으로 날아 도망치는 자신을 상상했다. 집에 와서도 자꾸 단순한 생명체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버릇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눈도 없이 진흙 속을 기어다니는 지렁이가 되고 싶어졌다. (중략)

이야기 끝에 나는 오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으로서 살아야 한다고 스님이 말했다. 나는 오리가 아니고 사람이라고 스님이 말했다. 나는 오리가 아니다. 내가 오리가 아니구나. 그 말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어깨가 떨리면서 눈물이 나왔다. 그때 나는 엉엉 소리내 울면서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가슴에 점점 더 열이 오르면서 터질 듯이 답답해하는, 갑갑해하며 옷을 쥐어뜯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나는 오리도 될 수 없고 우주인도 될 수 없고 그냥 사람으로서 살아야 한다. 협소 공포증을 느꼈다. 더 작아질 수도 없고 탈출할 수도 없는 숨막히는 갑갑함.(중략)


몇년전에 즐겨보는 잡지에서 점선이 아줌마 인터뷰를 읽었다.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서 그 아줌마 책을 다 샀다. 가끔 읽었다. 별 다를것 없는 것을 별다르게 써놓기도 하고, 별다른 것을 별볼일 없는 것처럼 써놓기도 했다.한달전 쯤인가 점선이 아줌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영남의 여자친구들을 알아보는 코너에서 등장한 점선이 아줌마를 사람들이 '고인'이라고 표현했다. 아 그렇구나. 자려고 누운 밤에 민둥민둥   잠이 안온다. 책장에 일렬로 꽂아놓은 점선이 아줌마 시리즈가 보여 그 중 한권을 집어들어 읽었다.

점과 선이 만나면 재미있다.
원이 되고, 삼각형이 되고, 사각형이 된다.
사람으로 태어나 점과 선을 품고 아름다운 면面들을 잔뜩 꾸려두었으니
점선이 아줌마,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