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品/것

럭셔리 블루


공부 열심히 하라고 듀오백 의자까지 셋트로 짜맞춰준 책상에 앉아본일이 사실 별로없다. 책상에 대고 칼 긋는걸 좋아하는 못된 성미탓에 산 지 얼마안가 책상은 난도질이 되었고, 진득하게 앉아 공부하는 성향이 못 되는 지라 집에서 공부해 본 기억이 거의 없기에 내 방의 책상은 물건쌓아두기 용으로 쓰인지가 참으로 오래다. 책상을 새로 산 것이 중학생 때였으니. 미안하다 책상아. (게다가 듀오백도 몸체와 등짝이 분리된지 오래되어, 등짝은 다락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고 몸체에는 한번씩 앉아 빙빙돌며 까부러치기를 한다.) 

남는 것이 시간이오, 추운 날씨가 다가오니 방바닥이 선득하여 맨바닥에 등을 대고 빙글대기도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어제 11번가에서 '럭셔리 블루' 테이블을 구입했다. 박스 한면에 큼지막하게 프린트 된 '럭셔리'를 보고 있자니 슬몃 웃음이 난다. 만 오천원짜리 테이블이 럭셔리하면 얼마나 럭셔리하단 말인가. 한국 사람들, 럭셔리 참 좋아한다. 구천구백원짜리 티셔츠도 럭셔리. 만삼천원짜리 시계도 럭셔리.럭셔리. 아 럭셔리 대한민국.

아무튼간에 럭셔리 블루 테이블을 펼치고 나니 좁은 방이 한결 더 좁아뵈지만 좋다. 취향대로라면 빨강을, 사진빨을 위해서라면 깨끗한 흰색을 구매하고 싶었으나 창의적인 사고와 집중력 향상을 위해 파랑을 구입했다. 쌔빨간 테이블 위에 하얀 책을 펼쳐놓고 들여다보면 눈이 동 날 듯 싶기도 하고, 빨강이 식욕을 자극한다는데 괜히 오밤중에 빨간색 테이블을 보고 위장이 동요하는 일
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한때 십자수에 골몰했던 적이 있었는데, 미피를 새긴답시고 쌔빨간 십자수 천을 구해 그 위에다 하얀색 미피와 노란색 풍선과 새파란색 미피 옷을 새기다가 구토를 한 적 있다. 눈에서도 자꾸만 번뜩번뜩 별이 뵈더라니.

럭셔리 블루까지 방에 들여놓았으니, 두문門불출 하는 삶이 두방房불출 하기도 곧 머지 않았다.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렌지 음악  (3) 2009.10.22
시험기간  (0) 2009.10.20
심슨의 살 떨리는 베팅  (4) 2009.09.26
소원을 말해봐  (0) 2009.09.16
나비넥타이  (2) 2009.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