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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입니다

△ 2017년 8월 11일의 아침. 빽빽한 여름 사이로 조금씩 가을이 스며든다.

 

 

 

'아 씨발 존나 진짜 회사 때려치고 싶다'

 

이미 차고 넘치는 콩나무 시루를 기어코 몸으로 디밀고 디밀어, 뒷문으로 겨우 올라탄 출근 버스. 몸은 이름모를 어떤 남자와 착 달라붙어 있고, 발은 수시로 여닫히는 버스 뒷문에 자꾸 스친다.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흔들림에 끄떡없을 정도. 출발과 정지신호를 반복할 때마다 앞으로 쏠렸다 뒤로 쏠렸다 하다가 나도 모르게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내뱉은 한마디. 나와 착 달라붙어있던 콩나물 1이 흘끔 나를 바라본다.

 

*

 

내리막을 달려내려 버스를 겨우 잡아타고, 한 정거장에 족히 20분은 걸리는 교통 체증때문에 마음이 조급해 동동거리다 나까지 체증이 일어날 것 같은, 늘 이사를 가야겠다고 욕을 하기를 몇 개월째 반복하는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뛰어내려 풀쩍풀쩍 톰슨 가젤처럼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을 다다다 달리며 헉헉 대고, 지하철에 겨우 몸을 싣고 다시 갈아타고 또 다다다 뛰어올라가 버스를 타야하는. 사람들은 요즘 살도 빠지고 예뻐졌다고 입을 모으는, 지옥 출퇴근길의 부수적 이펙트.

 

*

 

이런저런 회사에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붙고, 떨어지고, 다니고, 그만두고. 회사를 다닌 기간이 적지는 않지만 나는 늘 '회사원' 으로써의 나를 거부해왔다. 정확히는 회사원인 내가 부끄러웠달까. 일개 회사원인 내가. 뭐랄까. 나는 내 꿈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고 싶은데,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 아침 아홉시부터 컴퓨터 앞에 꾸역꾸역 앉아있노라면, 그러니까 그 시간들은 나의 날개를 착 접고 남의 꿈을 향해 열심히 벽돌을 이고 나르는 일개미가 된 기분이었달까. 나는 나비인데, 날개를 활짝 펼쳐야 하는데, 퇴근하는 나비는 날개가 축 젖어서 도무지 날 수 없지, 하면서. 회사라는 조직에 몸 담은 나는 마치 꿈을 답보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부끄럽고 죄스러웠달까.

 

*

 

지쳐서, 피곤해서, 사람들과 맞지 않아서, 분위기가 별로여서, 업무가 내 적성에 안 맞아서. 이런저런 빤한 이유들로 회사를 그만두면서도 그만두는 순간부터 한켠에서는 알고 있다. 나는 다시 회사를 다녀야 하고 다닐 것이라는 것을. 실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꿈을 답보한 것도, 꿈을 저버리는 행위도 아니다. 꿈을 향한 거창한 한 발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닌 것처럼. 꼭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주 예전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개인이, 또 그러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소비하는 이분법적 잣대는 회사를 꿈과 대척되는 지점에 두는 것이다. 회사는 꿈을 저버린 '패자'들의 집단이고, '용자'들만이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라고. 발은 늘 회사에 두면서 - 당연히 둘 수 밖에 없고- 눈은 저기 강건너편 '용자들의 세상'을 꿈꾼다. 회사를 다니는 나는 늘 패자이기를 자처했다. 패자들의 집단에서 잘 하고 싶은 열망도 없고 - 잘 해봤자 패자 아닌가 - 회사를 박차고 꿈을 이룬 젊은이들의 든든한 배경과 때마침 찾아온 운때와 틈새를 파고드는 민첩한 상황 판단력과 명민하게 착착착 돌아가는 두뇌를 부러워했다. 그래서 자주 회사를 그만 두었다. 한 회사에서 5년, 7년을 보내는 친구들을 보면 현대판 노예를 보는 것 같아서 갑갑한 마음이 들었고, 입으로는 대단하다며 추켜 세웠지만 속으로는 쯧쯧쯧 가련함에 혀를 찼다. 

 

 

비오던 어제. 자정을 넘겨 늦은 밤까지 회식이 이어졌다.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늦어진 걸 모르고 혼자 정시에 출근한 나는 텅 빈 사무실에 앉아, 조금 더 잘 수 있었는데! 방 청소를 하고 나올 수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빨래를 돌리고 나오는 건데! 일찍 나온 한 시간을 나라잃은 사람처럼 서러워하다가, 출퇴근과 업무 시간을 제외하면 여백을 찾아 볼 수 없는 내 삶에 갑자기 찾아온 여백에 좀 당혹스러워 하면서 오랜만에 이렇게 저렇게 끼적인다. 회사에서 회사 얘기를 한다. 어제 아침의 나는 출근 버스에서 원 오브 콩나물 시루가 되어 얼굴을 양손에 파묻고 - 손잡이를 잡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 '아 씨발 존나 진짜 회사 때려치고 싶다' 라고 나즈막히 중얼거렸고, 그제 저녁 퇴근하는 나는 지하철에서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책을 읽는 척 펼친 페이지에 얼굴을 파묻었으나 자꾸만 눈물이 나서 훌쩍 거리다가 내릴 정류장을 한참이나 지나쳤다. 울 이유도 없는데 눈물이 뚝뚝나는 내가 한심했던 건지, 그런 나를 한심해하는 나에게 서러웠는지, 아니면 그저 내릴 정류장을 한참이나 지나쳤다가 다시 집으로 가야하는 길이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졌던건지 어쨌든 나는 집으로 가는 내내 울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의 나는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고기를 아주 많이 먹고, 냉면까지 한 사발 말아먹고, 노래방에 가서 물을 촥 끼얹는  몇 곡의 철지난 발라드를 부르고 집으로 왔다. 

 

 

회사는 나에게 무엇일까. 회사에서 회사 생각을 하면서 회사에 관한 글을 쓴다. 나는 회사원이었고, 회사원이고, 회사원일 수도 있다. 아 책을 써야하는데 회사를 다니느라 시간이 없네, 만 몇 년 째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일개 회사원이었고, 회사원이고, 회사원일 수도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흠모하고 미워하는 회사원이었고, 회사원이고, 회사원일 수도 있다. 

 

나는 늘 회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회사를 다닐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든 생각은 '좋은 회사원이 되고 싶다' 라는 것이다. (좋은, 보다는 멋진이 좀 더 낫겠군.) 회사에서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니, 그 시간을 좀 멋지게 보내고 싶다. 그리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멋지게 내 꿈을 이루고 싶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회.사.원.입니다.

 

* (어제 회식의 여파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이른 출근으로 두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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