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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굳바이


나는 장소에 애착이 많은 사람이다.

최근에, 내가 정말로 많이 아꼈던 가게가 없어진 걸 알아내곤 좀 황망한 마음이 되었다. 정확히는 없어진 게 아니고 가게가 있던 자리에 서느런 철골이 대신 서 있었지만. (서울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허물고 짓는게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적응이 안된다.)

가게로 전화를 걸어 봤더니 당연히 받지 않아서, 인스타그램을 하지도 않는데 굳이 가게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내 댓글을 남겼다. 며칠이 지난 어제 답을 받았다.

/ 우리 까페를 좋아해주시고 궁금해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좋은 손님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건물 재건축 문제로 문을 닫았다고 했다. 창문에 복닥복닥 붙어있던 큐방을 타고 들어오던 햇살은, 단정한 오렌지색 소파는, 좋아하던 사람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바밤바 아이스크림은 결코 재건축 될 수 없을텐데.

장소에 모든 마음을 덥석 주는 나는, 장소가 사라지면 그 곳에 주었던 마음을 어떻게 돌려받고 어떻게 꺼내보아야 할까. 나의 작은 한 부분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어제 날짜로 대만의 쁘띠썸머하우스가 문을 닫았다. (썸머는 샐리의 딸 이름!)
쁘띠썸머하우스가 '소등'한다는 샐리의 글을 보면서, 정말로 불을 탁 끄는 영상을 보면서 좀 울었다. 더디게 불을 끄고 미적미적 문을 닫는 썸머가 보인다. 샐리가 남긴 아름다운 글을 읽다가 시큰해서 울고,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또 한 번 시큰해서 울었다. (중국어로 읽으면 더 아름답다. 최대한 담아보려고 애는 썼지만. . .)

다음에 꼭 다시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삶은 '다시' 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이 아름다운거겠지만.

*

작은 썸머의 집이 정식으로 문을 닫습니다.

들러준 여행자 분들께 감사합니다.
여행자로 들러 좋은 친구가 되어준 분들께 감사합니다.
소일거리를 도와준 분들(알바생)께 감사합니다.
좋은 친구가 되어준 알바생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이 곳에서 일어났던 아름다웠던 일들과 난감했던 일에도 감사합니다.

3년동안,
작은 썸머의 집 덕분에
여러분 덕분에
내 생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썸머에게는 더욱 그렇겠지요.
두 살이었던 아기가 이제 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작은 썸머의 집은 그 애의 원동력이었어요.

지난 3년 반,
작은 썸머의 집은 정말로 많은 손님들을 떠나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작은 썸머의 집을 떠나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3년 후, 우리는 오늘을 되돌아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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