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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들/다른동네

시청 <깡장집>

시청 부근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일부러 꼭 들리는 깡장집. 식사 때가 아닐 때 들리게 되니 늘 가게는 텅 비어있다. 내가 주문하는 메뉴는 언제나 백순두부.

일전에도 한 번 이곳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난 이 곳 아주머니를 참 좋아한다. 낭랑한 목소리에 선한 마음이 담뿍 묻어나는 고운 분이다. 주방 아주머니들에게도 '언니 언니'하며 주방 일을 잘 도와주신다. 이 집 뜨끈한 백순두부 맛의 비결은 아주머니 목소리를 끼얹어야 비로소 완성된달까.

오늘도 역시 나는 식사 때가 아닌 애매한 시간에 들리게 됐다. 가게는 텅 비어있다. 아주머니가 살갑게 따순 물을 내주고는 꼿꼿이 앉아 책을 참 열심히도 읽는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흘끔흘끔 곁눈질을 하다가 - 내가 중년 사내가 아닌게 퍽이나 다행이다 -  저 낭랑한 목소리로 책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을 하시면 참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책인지 궁금했던게 나만은 아닌 모양인지, 잠시 한가해진 주방 아주머니도 나와서 읽고있던 책을 묻는다. 참 열심히도 설명해주는 아주머니. 어떤 부분에는 공감이 가고 또 어떤 부분에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며 이야기한다.

계산하고 나가면서 아주머니에게 읽고 계신 책이 무어냐고 물었다. 일본 저자가 쓴 책이었는데 -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새 옷 대신 우산을 사라는 메시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와닿은 바가 있어 읽고 있다고 했다. 살림을 늘리면서 거기에 시간을 쓸 바에 남편과 놀러다니고 싶다고. 더 가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더 잘 살고 싶다는 아주머니의 예쁜 바램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읽어보겠다고 이야기하고 나왔다.

다음에 들를 때는 책 선물을 드려야겠다. 곰곰 고르다가 김창완 아저씨의 책이 딱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요즘 나는 자꾸 남모를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직접 구운 작은 케이크 조각을 버스 기사님께 쥐어주고 도망치듯 내렸는데 그제인가, 주머니 속에 쿠키를 만지작 거리다가 버스 기사님께 주고 또 도망치듯 내렸다. 버스가 서고 또 출발할 때마다 기사님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하는데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거다. 왜 그럴까. 인사가 나에게 오는데 왜 받고 또 돌려주지 않는걸까. 그 모습을 줄곧 보다가 나도 모르게 '기사님, 이거 드세요' 하고 내렸는데, 그 순간 그 분 표정이 얼마나 환했는지.

나는 늘 많이 잘 받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첫째라서 많이 받았고 하나뿐인 딸이라서 많이 받았고 선생님들이, 선배들이, 후배들이, 친구들이 예뻐해서 많이 받았다. 나는 계속 많이 잘 받을거다. 계속 많이 잘 받고 잘 줄거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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