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머리

정말로, 지금




오늘은 새벽 5시 40분 쯤에 일어났습니다. 겨울의 좋은 점은 늦게(?) 일어나도 동이 트는걸 볼 수 있다는거죠.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무얼했느냐. 책도 좀 보고, 이틀전에 만들어둔 애플시나몬티도 드디어 개봉했어요. 뚜껑을 열자마자 그윽하게 퍼지는 계피냄새에 병에 코를 박고 고 감동 좀 하면서요. 계피는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두둠칫)


물을 끓이고 사과를 얇게 썰어 계피도 하나 동동 띄우고, 시커멓던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는걸 보면서 맞이하는 아침. 제법 근사합니다. 이게 무어라고 작은 것 하나에 이토록 행복을 느끼는지, 그러고보면 행복이라는 건 참 별거아닐텐데요. 얼마전에 친구 하나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어!' 라고 하기에 '왜?' 라고 물었더니 '돈이 졸~~라게 많이 들거든!' 하고 대답한 것이 생각나 차를 마시며 피식 웃었어요. 


어제 잠들기 전에 페이스북에서 '20대에 하지 않아서 30대가 후회하는 것들' 이라는 카드뉴스를 봤거든요. 그런거 싫어합니다. '뭐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들'. 이미 하지 않은 건 하지 않은건데 어쩌라고요. 저는 10대에 '성공하는 10대들의 일곱가지 습관' 이라는 책을 샀는데요, 그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본 적 없이 10대를 흘려보냈습니다. 공부하느라 할 시간이 없었어요.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책의 저자도 그 중 단 한가지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지금이야 '어쩌라고.' 라면서 콧방귀라도 뀌어줄텐데, 어리고 여린 10대 시절에는 코로 방귀를 뀌는 기술이 없어서...(킁킁)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취미로 발레를 2년간 한 적이 있는데요, 발레를 시작한 지 몇 개월 지나서 남동생에게 물어봤어요.

/ 나 발레 배우면 어때?

/ 야, 그런건 몸 유연한 어린애 때 하는거지. 니는 이제 뻣뻣해서 안된다. 


그 때 느낀게 '아, 남들 하는 말. 전부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겠다' 라는 거예요. 아마 발레를 하고 있지 않았으면 '그런가' 하면서 머리나 긁적이다가 포기해버렸을텐데, 발레라는 거 시작을 마음 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꽤 재미있었거든요. 나름의 소질도 발견했고요. 이런 비슷한 경험이 또 있어요. 얼마전에 블로거 섭외 명단을 작성하는데, 한 블로거의 특징 옆에 담당자가 '얼굴 예쁨' 이라고 써놨더라고요. 당연히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왠 걸, 전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거예요. 맙소사. 저도 열심히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린 때가 있었는데, 항상 제 고민의 3위 안에 꼭 드는 고민이 '너무 못생겼다' 였어요. 겁은 오죽 많아 성형은 꿈도 못 꾸는데, 콤플렉스는 극에 달했지, 뭐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코만 세우면 인상 확 바뀔거라면서 코 수술을 권한 사람도 있었어요. 그 때 만약에 코 수술을 했다면? 인상은 확 바뀌었겠죠. 그런데 내가 바뀐 내 얼굴을 좋아했을까요? 나는 여전히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을거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는 거울 속에 비치는 어떤 모습이든 마음에 들지 않았을테니까요. 


잠깐 옆으로 샜는데 다시 어제 자기전 읽은 페이스북 카드 뉴스로 돌아올게요. 놀랍게도 저는 30대들이 후회한다는 20대의 행동지침들을 거의 대부분 다 했더라구요. 기억나는 몇 가지 항목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좋아하는 것을 쫓아 시행착오를 해 볼 것.

2. 외국에서 혼자 생활해 볼 것. 

3. 외국어를 최고 수준까지 배울 것. 

4.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말 것.

5. 다양한 취미를 가질 것 .

6. 운동을 꾸준히 할 것. 

7.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을 익혀놓을 것. 


나머지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살던 지역을 세 번이나 바꿀 정도로 - 지금 생각하면 진짜 대책없이 무모하긴해요.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합니다. - 열심히 시행착오를 했어요. 서울에 올라와 눌러 살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이고요. 이렇게 오래 서울에 머무를 줄 몰랐으니까요. 


외국에서 2년정도 혼자 살았고, 10대도 20대에도 많지는 않지만 몇 나라에 혼자 여행 다녀왔으니 이것도 클리어. 외국어도 최고점 자격증을 땄으니 이것도 해봤네요.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그냥 흘려보내려 하지 않았고요. 다양한 취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운동 역시 꾸준히 해왔어요.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등의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도 할 줄 아니까요. 


'그래서 너는 20대에 해본게 많아서 좋겠다는 거냐?' 이게 아니고요. 좀 놀랐어요. 어제 이걸 보면서. 어? 나 나름대로 괜찮게 살았네? 하고. 사실 정말 해본게 많거든요. 잘하려고 애쓴 것도 많고, 해낸 것도 많고. 그런데 이제야 뒤를 돌아보니 '나 나름 괜찮았잖아!' 하고 깨달은거지, 그 때는 전 늘 결핍감에 목이 메고 불안했어요. 더 많이 해내고 싶고, 더 잘 해내고 싶은데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또 비교하고. 내가 만약 그 순간순간마다 무엇을 똑같이 하더라도 다른 마음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좀 더 가볍게, 즐겼으면 편안했을텐데 '내가 맞게 가고 있는건가, 이게 제대로 하는건가' 를 검열하고 아닌 것 같아서 자책하는 밤이 대부분. 


20대에 뭘 좀 더해보면 어떻고, 덜 해보면 어때요. 그냥 그렇게 사는거지. 각자의 성격이 다르고 처지가 다른것인데. 주절주절 늘어놓는 요지는 그러니까 힘빼고, 좀 더 가볍게, 편안하게 살자 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요. 뭘 그리 해내겠다고 애걸복걸하고 불안해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되 기쁘고 기쁜 맘으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요즘 뒤늦게 읽고있는 책, 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보면 '개처럼 살자' 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저도 기꺼이, 기쁜 맘으로 한마리 개가 되어 누비고 싶습니다. 왈왈.






'('_')()()() > 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숭늉  (0) 2016.12.18
대체할 수 없는  (0) 2016.12.17
작은 사람  (0) 2016.12.15
크리스마스  (0) 2016.12.13
아침  (0) 2016.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