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방은 봄여름가을겨울이 함께 뒤엉켜 서로의 머리를 쥐어뜯고있는 형국이다. 옷장정리를 하겠답시고 우르르 꺼냈다가 화만 화르르난다. 나는 청소를 빨리 잘 못하는 편이라서 여간해선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려고 노력한다. 한번 어질러지기 시작하면 어떤 꼴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청소를 하며 알음알음 이것저것을 집어먹다가, 벼뤄왔던 알감자버터구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며칠전 마트에 들렀을 때 알감자가 싸서 한 통 샀다. 집에 버터가 있기에 버터 믿고 산 이유도 크다. 내가 툭하면 사는게 유제품인데, 늘 깜빡잊고 유통기한 지나서 버린다. 유제품은 대체로 비싸거늘! 요즘은 아몬드버터가 그렇게나 사고 싶은데 애써 참고있다. 어쨌거나 휴게소에 들리면 꼭 사먹는게 알감자 구이인데, 양도 너무 적은데다 이미 뿌려진 설탕에 다시 소금을 치는 취향 고려치 않은 짠단도 싫었다. 알감자 열 알 남짓에 4, 5천원이라는 가격도 너무 비싸고.
그러나 알감자를 씻으면서 바로 깨달았다. 내가 괜한 짓을 했다는 것을. 일단 집에 감자 깎는 칼이 없다. 하나하나 장인정신으로 깎아야제. 게다가 한번 삶았다가 다시 버터를 둘러 구워야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싱크대 앞에 오도카니 서서 감자를 깎았다. 식구들과 함께 살 때 엄마가 그렇게나 멸치 대가리나 콩나물, 시금치를 함께 다듬자고 했었는데 난 대부분 매몰차게 동참하지 않았었더랬다. 엄마는 너무 지겨웠던거구나. 흑흑.
알감자를 겨우 다 깎고 이제는 한소끔 삶을 차례.
볶을거기 때문에 그리 푹 익히진 않아도되는데 이미 복잡한 공정에 지친 나는 나를 속여 먹으려고 작정했다. 그냥 삶은 알감자를 바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감자 자체가 맛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몇 알을 먹다가 일어났다. 그래, 너와 나의 인연은 오늘로 끝이다!
처음 만들어보지만 알감자 버터구이는 쉽다.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이고 알감자를 굴려주면 된다. 나는 소금을 살짝 치고, 후추도 좀 뿌려주었다. 고수도 있었으면 넣었을텐데. 다진 마늘도 약간 넣고. (귀찮다고 하면서 어째 점점 판이 커진다.)
집에서 만든 알감자 구이는 휴게소 맛이 안났다. 정말 맛있었다. 좋은 감자로, 좋은 재료로 만들어서 그런지. 이제 휴게소 감자는 안 사먹어야지.
(*) 건강, 미용의 문제를 차치하고 근원적으로 우리나라 식품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허용되는 세계 유일의 나라. 가습기 소식으로 시끌한데이어 밀가루가 도마에 올랐다. 썩은 방부제 20톤과 함께 버무려진 밀가루가 버젓이 온갖 곳으로 팔려 나갔단다. 내 입에도 수없이 들어갔을 것이며, 내가 한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는 영문모를 아토피 때문에 피부를 피나도록 벅벅 긁고 있을수도 있다. 이건 정말로 근원적인 문제다. '모로 가면 어쨌든 서울'이라는 성과주의적 모토 아래 과정에 대한 모든 것들이 깡그리 말살되고 있다. 이렇든 저렇든 맛있기만 하면되고, 이렇든 저렇든 잘 팔리기만 하면 된다. 성과 지향에 따른 과정의 비굴함은 화려한 겉포장으로 감추면 끝. 왜 우리나라에서 유독 장인들을 만나기 어려운가. 나라정신이 대접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먹는 것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면면에서 근원을 꼬집을 필요가 있다. 삶은 커다란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과정을 잘 살아내야 결과도 온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제발 좀 정신차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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