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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매일의 얌,채식

잃어버린 맛 : 간신히 잊지 않기를 춘천에 다녀왔습니다. 보수할 새 없이 끊임없이 꺼내쓰느라 닳고 닳아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나를 겨우 추스려 다녀왔습니다. 춘천에 딱히 소회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춘천에 가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춘천이 좋아졌습니다. (마음대로 갖다 붙인 뜻이긴 하지만, 봄 춘에 하늘 천을 쓴다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천도 좋고요. 봄의 하늘, 봄의 개울이 있는 고장.) 춘천은 잊고 있던, 바삐 사느라 잊은지도 몰랐던 많은 것들을 잇게 해준 도시였습니다. 유난히 푸른 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그랬는지, 건물들이 대체로 낮고 사람이 적어 그랬는지 곳곳을 천천히 거닐며 자꾸만 '호젓하다, 한적하다' 라는 감탄이 내 입에서 쏟아졌습니다. 장마로 인해 적당한 습기를 품고 있는 공기와 공간이 결탁해 자꾸만 무언가를 만들어냈는.. 더보기
뒷모습 : 온몸으로 느끼는 맛 이 계절을 몹시도 좋아합니다. 좋은 건 원래 세트로 팔잖아요. 오월과 유월을 묶은 오뉴월이란 말도 참 예 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카페에서 늘 마지막 손님을 맡게 됩 니다. 나가라는 말을 못하고 애꿎게 우리 테이블 주위만 물걸레로 닦는 카페 직원도 있고, 마감 시간 전이 지만 서둘러 테이블의 접시를 치우 며 마감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려주 는 이도 있습니다. 프래차이즈 카페의 마감시간은 보통 밤 열한시. 못다한 이야기의 아쉬움 을 뒤로 하고 이 늦은 시간에 밖으 로 나와도 참 좋은 요즘. 하늘은 완 전히 깜깜하지 않아 푸른빛이 살짝 감돌고, 온도는 카디건 하나를 살짝 걸치면 딱 맞게 선선하고, 바람은 부드럽게 나뭇잎을 지나 내 귓가를 쓸어올립니다. 어제도 친구와 저녁을 먹고 카페로 가 열.. 더보기
훠궈 : 접점을 찾는 수고로움의 기쁨 오늘은 반가운 친구와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습니다. 메뉴를 정하지 않아 만남 전에 메뉴를 정하려고 하는데, 영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겁니다. 저는 요 며칠 부실하게 먹은터라 묵직한 고기류가 먹고 싶었고 - 게다가 고기는 식당에서 혼자 먹기에 왠지 좀 머쓱해서요 - 친구는 요즘 소화가 잘 안되서 속이 편안한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나는 꼭 고기를 먹고 싶은데 친구는 국물이 먹고 싶다고 하고. 샤브샤브, 똠양꿍 등의 메뉴를 제안하다 궁리 끝에 훠궈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친구는 한번도 훠궈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옳타쿠나 싶었죠. '여태까지 너는 인생을 헛살았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다행히 고수도 잘 먹는다고 하니, 향에 대한 거부감도 없을테고요. 그동안 가본 훠궈집은 영 별로였는데, 친구가 찾.. 더보기
빈 도시락통 : 오늘도 나의 하루는 안녕합니다 매일매일 글을 쓰지 않는 가장 좋은 핑계 중의 하나는 '오늘은 쓸 말이 없다' 라는 핑계가 아닐까요. 더 이상의 핑계는 그만대고 싶다, 그렇다면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소재를 찾자, 매일매일 마르지 않는 나의 샘물은 무엇일까, 옳타쿠나! 밥이로구나. 인간은 매일 무언가를 먹어야하고, 나는 먹는 것에 꽤나 관심이 있는 인간이니까. 일주일의 오일은 직장에 나갑니다. 그리고 출근하는 나의 손에는 도시락 가방이 들려있습니다. 아이들 신주머니처럼 노오란 바탕에 도라에몽이 빙긋 웃고있는 나의 도시락가방. 스타일 구기기 딱 좋지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감수하고 대부분의 아침, 노란색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합니다. 일찍 일어난데다 머리도 감을 필요없고 아침시간이 아주 많은 날 - 그런 날이 몇 번이나 있을까!- 에는 .. 더보기
브루스케타 :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나만의 가장 완벽한 방법 부처핸졉! 부처핸졉! 부처님 오신 날은 참 좋은 날입니다. 특히 평일에 오신 해는 더더욱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짝꿍과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다는 국립수목원에 가기로 한 날! 짝꿍은 그저 늘 해주던대로 식빵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지만, - 코코넛오일을 발라 앞뒤로 노릇하게 식빵을 구운 뒤, 한쪽엔 과일 잼을, 다른 한쪽엔 아몬드버터를 바르는 게 저의 방식입니다 -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식빵을 홀라당 태워먹은 덕에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마침 집에 식빵과 함께 사다둔 호밀빵이 있어 브루스케타를 하기로 마음 먹었지요. 아스파라거스도 있겠다, 계란도 있겠다, 곰취페스토도 있겠다, 요리책을 탁 펼쳐두고는 좁은 주방을 개미처럼 왔다갔다하며 열심히 만들었어요.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더보기
삼색연근밥 : 당신을 생각합니다 △ 재피 매주 일요일마다 스님께 요리를 배운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메뉴만 몇 가지 골라 한 달에 두어번 배우던 것이, 이번 달엔 메뉴가 싹 다 마음에 들어 등록신청을 했다. 푸르름이 농익는 계절이라 그런지 스님이 알려주시는 메뉴에도 푸릇한 향기가 뚝뚝 묻어난다. 게다가 요리와는 별개로 알려주시는 산사의 꽃소식은 계절을 도통 잊고사는 도시 바보에게는 여느 소식보다 귀하다. / 지금 산에는 아카시아가 활짝 피었어요. 이리와서 향 좀 맡아보세요./ 재피는 지금 아니면 떫어져서 먹기가 어려워요. 맛이 좋지요? 어제 배운 메뉴는 삼색연근밥. 연근을 가로로 뚝뚝 자른 뒤 구멍 안에 찹쌀을 가득 넣어 쪄내는 요리다. 연근 자체에는 향이 없기 때문에 찜통에 넣기 전 연잎으로 연근을 한번 감싸주어 밥과 연근에 향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