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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애정하는 물건에 이름을 붙이시나요 ?

 

청한적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이름부터 덜컥 주시더군요.

(이미지 출처 : 노점 묵시록)

 

 

지난 주말에 강가에서 잠시 놀았다고 했잖아요. 강가에서 맥주병을 끼고 모이는 무리가 으레 그렇듯이, 아는 얼굴 반 모르는 얼굴 반이었습니다. 모르는 얼굴은 다음 번에 다시 보면 아는 얼굴로 바뀌어 있겠고요. 아무튼 무리 중에 여자 사람 하나가 말하기를, 자신의 모든 물건에 이름을 붙여준다고 하네요. 그 곁에 앉은 남자 사람 하나도 맞장구를 치더군요. "제 우산도 김우산씨예요!" 하고. (여자 친구가 김씨죠? 라고 물었더니 바로 맞다고 수긍하네요.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란!) 이름을 왜 붙이냐 했더니, 나에게 소중하니까 이름을 붙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강이를 찾으러' 떠나버렸고요. 하강이는 그녀의 자전거 이름이라고 합니다. 하얀색과 빨강색의 조합이라 하강이라고 하네요. 이왕이면 상승이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며 다음에 혹시 만나게 된다면 왜 '하빨이, 혹은 얀강이가 아니냐. 이름 후보에는 올린 적 있느냐.' 라고 시비를 털어볼 작정입니다. 물론 나도 여자 사람이니 '이 새끼 나한테 관심있는거야?' 라는 오해 살 일은 없어서 좋아요.

 

나도 어릴때는 소중한 물건 몇 가지에 이름을 붙여본 적은 있어요. 그리고 아마 두어해 전에 어떤 우쿨렐레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 '자기소개서' 를 양식에 맞춰 쓰던 중, '내 우쿨렐레의 애칭은 무엇인가요?' 라는 항목 때문에 이맛살을 잠시 찌푸리고 즉석에서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지요. 우쿨 이라고 썼는지 렐레 라고 썼는지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헬렐레.

 

김우산씨든 하강이든 상승이든 어쨌던 간에, 물건과 말에 대한 애착이 역시 상당한 나는 그 물건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기보다 원래의 이름을 쪼개고 쪼개는 걸 좋아합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습관적으로 그래왔던 것 같아요. 복숭아가 있으면 나는 복숭아를 사랑합니다. 그 물건에게 원래부터 부여된 '복숭아'라는 이름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복숭아'라는 말을 입안에서 굴려보고 그 음가를 입에 익게 하는 과정이 좋습니다. 그리고 '복숭아'라는 말을 쪼개기 시작해요. 왜 복숭아일까? 복사나무의 열매라서 복숭아라고 하는구나. '웅아'는 그럼 어떤 나무의 열매라는 뜻을 가지고 있나? 복사나무는 어떤 어떻게 생겼을까? 사전을 뒤적이면 복숭아를 [복쑹아]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복쑹아가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복숑아' 라는 말의 뿌리도 찾을 수 있어요. 복숑아 하고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불러봅니다.

 

우리 말에는 한자 말이 많은데 나는 한자 말을 싫어하기 때문에, 물건 이름이 한자 말이라면 한자 말을 혼자서 쪼개고 쪼개봅니다. 우산이라면, 비 가리개 정도로 한자 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게 만든 뒤에 안심하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북한 말을 좋아해요. 손가락말이나 손기척, 손가락 빵 같이 예쁜 말들. 그 정성이 대단하잖아요. 나는 혼자 쪼개고 쪼개다가 혼자 안심하고 마는데, 어쨌든 많은 외국어나 한자어가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누군가 힘 써서 만들어 놓은거니까. (물론 얼음 보숭이는 좀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드는 얼음 딱딱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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