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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90 + 1

늦지 말라고 몇번을 말해도, 매번 늦는다니까! 대체 어쩌자는건지. 내가 기다리는게 그렇게 당연한건가?

투덜투덜. 약속에 자주 늦는 남자친구에게 차곡차곡 쌓였던 짜증이, 며칠전 한 글귀를 읽고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내용인즉슨 '나의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그가 나를 한번도 기다리게 하지 않은 것. 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 남을 배려할 줄 아는사람' 이었던 것 같네요. 그 글귀를 읽으면서, 새삼 남자친구의 행동을 곱씹어 보게 되었고 '나를 많이 기다리게 하는 것 = 나를 배려하지 않는 것' 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콱 박히더군요.

비오는 토요일. 느즈막히 늦잠을 자고난 당신과 약속을 잡으며, 통화의 말미에 재차 당부를 합니다. '늦지마!' 그런데 왠걸. 또 늦는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자니 슬며시 화가 치밀더군요. '가고 있는 중인데, 이쪽으로 좀 올라와' 라는 말에 세상의 온갖 짜증을 얼굴에 그려가며 위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번엔 그냥 안넘어가야지. 이번엔 한마디 해줘야지. 입술을 씰룩거리며 남자친구를 마주하는 순간, 내 앞에 장미를 내미는 당신. 인간의 표정이 그렇게 긴박하게 노선을 갈아탈 수 있다니! 내 표정 변화에 스스로가 놀랍더군요. 하여튼 여자란 생물은 묘하다니까요.

'우리가 오늘 91일인데, 90일에 + 1을 해서 열송이야.' 조금은 덤덤하게 꽃을 건네는 당신.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는 아홉송이를 사려했는데 꽃파는 아주머니가 막무가내로 열송이를 사가라며 포장을 했다네요. 꽃을 받아들고는, 남자친구가 놀릴정도로 어정쩡하게 걸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이, 나의 품에 안긴 꽃다발을 흘깃거리며 지나갑니다. 쥐어짜내려해도 내 몸 구성성분중에 애교는 본디 결핍인듯하여 '고마와. 정말 행복해' 라는 말대신 그냥 '어, 왠 꽃이야?' 응~ 고마워.' 하고 말았던 것 같아요. 당신이 술에 잔뜩 취한 틈을 타서 '정말 고마워!' 라는 말을 조금은 비겁하게(?) 전했네요.

고마워요. 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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