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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7년 11월 2일

 

이 계절에 저 홀로 여름인양 새초롬하게 핀 보라색 꽃. 바람이 많이 불어 결국 제대로 담지 못했습니다. 담으려는 노력을 담아봅니다.  

 

다들 따순 밥 한 숟가락이라도 들고 세상 밖으로 나오셨습니까. 바람의 온도가 많이 차가워졌어요. 저는 벌써부터 발목까지 오는 두툼하고 시커먼 패딩 잠바를 입고 다닙니다. 땀이 좀 삐질삐질 나긴 하는데, 이삿짐 정리를 마치지 못해 마땅히 걸칠만한 것이 없어서 입고 다니다 보니 나름 계절에 어울려요. 이제 막 11월의 초입인데, 이번 겨울은 또 어찌날까 싶을 정도로 쌀쌀하고 차갑습니다.

 

저는 대부분 아침밥을 먹지 않아요. 눈만 뜨면 "밥 먹어라!!!" 하는 엄마의 부름에 부리나케 밥상 앞에 다가가 앉던 10대 시절을 지나고 나니, 아침 밥을 먹지 않은지도 10년이 넘은 터라 안 먹던 아침밥을 먹으면 괜히 속이 더부룩하고 점심도 맛이 없어서, 살짝 배가 고픈 아침도 웬만하면 무언가를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침밥이 맞지 않는 체질이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을 밥을 먹고 싶었어요. 평소에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잘 없으니 쌀이 있을리가 있나요. 건강 좀 챙겨보겠다며 비싸게 사두고 묵혀버린 쌀들은 이사하면서 다 버렸습니다. 알뜰한 주부님들 같으면 묵은 쌀을 물에 푹 불렸다가 떡이라도 만들었을텐데, 그 떡을 또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서 배부른 소리지만 휙 버렸어요. 포근하고 따듯한 것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라 그런지, 오늘 아침에는 꼭 밥을 먹고 싶어서 늦은 저녁 현미쌀을 불려놓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미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물에 충분히 불려야 하지만 아쉬운대로.

 

아, 오늘 아침에 느꼈어요. 아침밥을 안 먹는건 체질이 아니라 어쩌면 '여우의 신포도' 같은 거구나. 일어나서 씻고 주스를 갈고 옷을 입고 뭔가를 분주하게 우당탕탕 해내야하는 직장인에게는, 아침밥을 차려먹을 시간이 없는거였구나, 새삼 느꼈달까. 안친 밥은 나가야하는 시간에 맞춰서 겨우 됐습니다. 한 숟갈이라도 먹고 싶어 어제부터 기다렸던 건데, 이렇게 그냥 가면 하루종일 너무 마음이 고플 것 같아서 식당 한편에 서서 바쁜 숟가락을 입으로 밀어넣는 직원 마냥 현관 앞에 서서 맨 밥을 입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세 숟갈 정도? 자정 전에 주문하면 그다음날 현관 앞에 배송을 받는 식품 서비스를 자주 이용해요. 어제 정확히 11시 59분 50초에 주문해서 오늘 새벽에 집 앞으로 당도한 올리브 절임을 급하게 까서 밥과 함께 씹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먹고 싶었던 밥은 이런거였어요. 따끈한 밥에 된장국에 계란 후라이. 아니면 계란에 토마토를 휘휘 넣고 볶은 중국식 계란 토마토 요리같은 것을 곁들이고 싶었는데. 아침 식사가 못내 아쉬워서 점심에는 옆자리 인턴 친구와 함께 백반집에 갔습니다. 허연 쌀밥 한 그릇을 다 먹었는데도 배가 계속 고픈건 왜일까요.

 

(*)

먼지를 털어낸다, 라는 표현이 온라인에서는 적합한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어쩌다보니 꽤 오랜시간 블로그를 돌보지 못했네요. 몸보다는 마음이 바쁜 계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아이 앰 히스레저>라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어요.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삶은 밀고 당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연기란 삶과 자기자신에 대해 배우는 것'

이라는 말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는데, 여운을 재빨리 확인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길게 길게 아쉬워하고 음미하는 중입니다. 그의 말대로 밀고 또 당기면서,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면 저는 한동안 페달을 제 쪽으로 꽤나 당기는 중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또 밀 차례이지요. 그래야 삶이라는 자전거가 앞으로 굴러갈테니까.

 

막이 내리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어요. 

다들 따뜻한 11월 맞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