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에서 꽃 한송이 앞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꽃이 유달리 예뻤던 것도 아니고, 꿈에 그리던 달랏도 아니었고, 그저 그런 일상의 어느 작은 조각 앞에서 나는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나는 늘 나를 열망했다. 진짜 나. 질투하고 옹색하고 소심하며 두려워하고 비겁한 나 말고, 너그럽고 다정하며 신실하고 온화하며 헌신적이고 용감하며 정의롭고 자비로운 나. 반쪽의 나를 열심히 부인하느라 반쪽의 나를 살아왔다. 반쪽의 나를 살아왔다는 건 반쪽의 삶을 살아왔다는 뜻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딘가에 매여, 혹은 오지않은 미래에 자주 가닿아 허공을 바라보면서. '진짜 나' 라는, 그림자를 부인하는 가공된 나와 '진짜 삶'이라는 반들반들하게 정제된 삶만을 원하면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며, 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해 살며, 매 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을 위해 살며, 사랑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얻기 위해 살아왔음을 알아차릴 때.
내게 주어진 삶의 모든 것에 감사를, 내게 주어진 나의 모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을 때.
나는 그제야 조금은 나를, 그리고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꽃 한송이에서 우주를 본다. 코스모스. 적확하게 나뉘어진 꽃잎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질서정연한 우주' 라는 뜻의 cosmos가 왜 이 꽃에 갖다 붙었는지 알아차릴 법도 하다. 그러나 코스모스가 뿌리를 내린, 흙더미와 돌뿌리와 온갖 벌레와 균들이 마구 뒤엉킨 카오스를 비로소 알아차린다. 꽃 한송이에서 우주를 본다.
'혼돈 속의 질서' '질서 속의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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