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아무리 높아져도
갑자기 구름들이 자취를 쏙 감추어도
얼굴에 와닿는 공기가 선뜩해도
햇살이 노랗고 예쁘게 익었어도
나만이 인정하는 가을 감별법이 있다.
바로 아침에 샤워를 하고 욕실 문을 열었을 때
온몸이 오소소 추우면 비로소 가을인 것이다.
알람을 듣고 일어난 적은 없지만,
월요일은 알람을 열 개정도는 맞춰둔다.
분명히 다가오는 월요일을 막아보려 온몸으로 버둥거리며 늦게 잘 것이고
월요일 아침은 도로 사정이 유난할 것이며
또 일찍 출근해야하기 때문.
일찍 집을 나섰는데
정말로 가을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구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늘로 아주아주 높이 올라가면 어딘가에 속닥하니 모여서
담배라도 피고있는 구름들이 보이려나.
회사에 도착해서 문득 창밖을 내다봤는데
나팔꽃이 참 예뻤다.
아직 나팔꽃이 피는구나.
나팔꽃의 꽃말은 모닝글로리, 아침의 영광이다.
어렸을 땐 나팔꽃을 제일 좋아했다.
(집에 나팔꽃 밖에 없었다.)
나팔꽃 씨를 받아서 싹을 틔우고 흙에 옮겨심고 물을 주고 덩굴이 올라갈 수 있도록
가지를 대주고, 이런 모든 것들을 어린 내가 했다. 그런걸 좋아했다.
가을이 되면 책에서 본 대로, 나팔꽃들은 씨방을 동그랗게 부풀리고 그 안에 새까만 씨를 가득 넣어두었다.
그 씨를 받아서 잘 가지고 있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심고 보라색 나팔이 뿜뿜! 하고 울리도록 오래 바라보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나팔꽃을 대체 몇 년만에 본 건지 모르겠다.
장미, 수국, 작약, 수수꽃다리 같은 근사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화단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집에서도 나팔꽃은 자취를 감췄다.
어느 집에서도 나팔꽃 모종은 팔지 않는다. 어디든 쉽게 구할 수 있고 애써 돌보지 않아도 어디선가 꽃을 틔우니까.
사람들은 쉬이 구할 수 있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게는 쉽게 애정을 거둔다.
나는 문득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 안에서 나가는 것이 한동안 아무것도 없었다.
그 좋아하던 요리도 한동안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쓸 수가 없었다, 가 정확한 표현이겠지!)
기타도 치지 않았다.
어제는 용기를 내어( 때로는 이런 것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가까운 산에 가서 오래 앉아 있었다.
35미터쯤 되는 높은 키를 자랑하는 빽빽한 숲에 혼자 앉아서 하늘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이 산에서 이 지점을 좋아한다. 그리 좋아하면서도, 집에서 버스 세 코스면 딱 인데도
일년에 한 번을 쉬이 갈 수 없다는게 아이러니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게으르죠.)
숲에 앉아있는데 엷은 비가 내렸다.
햇빛이 비치고 나는 숲에 혼자 앉아있고 비는 오고
흙냄새가 부풀었다.
빗방울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을 가만 바라보다가
비가 점점 짙어져서
가방을 쓰고 덜덜 떨면서 앉아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오래도록 대답하다가 문득 저녁이 되었다.
살고 있는 건물의 주차장 끄트머리에 매달려
오래도록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인지, 뭔지가 반짝반짝했다. 예뻤다.
밤하늘도 높았다.
어쨌든 가을이 왔고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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