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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2015년 5월 19일 : 인생은 알 수가 없어 △ 2년 꼬박 살던 방을 새 주인에게 넘겼다. 밤 열시 삼십분. 그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집 근처 한방병원에서 엎드려 침을 맞는데 진동이 북북 울렸다. 두 번은 문자다. 잠깐의 침묵. 실눈을 가만히 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귀하의 자질은 겁나 높지만 안타깝게도...'라는 문자였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재빨리 따라붙는다. 최종면접에서 느낌이 좋았다. 오라는 말도 없었는데 '가네 마네'를 놓고 가족들과도 분분했으며 내 안에서도 분연했다. 일주일 내내 머리가 아파 잠도 이루지 못했었더랬다. 이게 바로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의 좋은 예. 그러니까 이미 될 꺼니까 방을 내놨다. 새로운 세입자를 찾는 일.. 더보기
2015년 5월 17일 : 내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아무도 꿈에도 모를거야 △ 내가 우리 동네를 얼마만큼 좋아하느냐. 비행기 작은 창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의 풍경만큼 좋아한다. (인터넷에) 방을 내놨다. 하루만에, 아니 일분만에 결정한 일이다. 관심도 없던 집이며 땅 따위를 갑자기 몹시도 갖고 싶다고 이 동네에 정을 붙이면서 줄곧 생각했었다. 내리 삼년을 살았는데도 이 곳이 안고 있는 풍경이 좋아서, 그리고 이 곳에 묻어있는 내 모습이 좋아서 이 동네에 내 집 하나 있었으면 소망한 적이 적지 않다. 갑자기 많은 낯선 번호들이 내 핸드폰을 울렸고- 이력서를 쓰는 중이었다면 낯선 번호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뛰어 진즉에 미쳤을 것이다. 한동안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울리는 모든 전화에 일단 심쿵했고, 받을 때 공손을 넘어 읍소 했던 것 같다. 눼이눼이-, 아침부터 낯선 얼굴들이 내 방.. 더보기
2015년 5월 12일 : 구남친 클럽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고, 세상에 둘도 없는 그녀 품에 '니은' 하나만 갖다 안기면 세상에 둘도 없는 그년이 된다.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서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꿈 꾸느라 진을 다 뺐다. 어제의 힘들고 울적한 기분을 이미지로 치환하면 그런 장면인 것인가, 그도 아니면 어제 잠깐 만난 선배와 들렀던 까페가 공교롭게도 작년 이맘때 구남친을 처음 만났던 그 까페라 나도 모르게 무의식을 건드렸던 것일까. 구남친 시키가 꿈에 나왔다. 발단 전개 절정 위기는 다 건너뛰고라도 결말만 좋으면 되는 우리들 세상이 아니던가. 엔딩이 구리면 해피 발단, 해피 절정은 온데간데 없다. 어쨌든 구남친 시키와의 엔딩장면이 꽤 마음에 상처가 됐던터라 늘 미움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서걱.. 더보기
2015년 5월 11일 : 지금 뭐해 자니 밖이야? △ 나무 밑에 누워있었더니 벌레가 후두두 근질근질 오늘 출근이었는데. 어제 늦게 잤는데도 새벽 여섯시에 눈이 반짝. 그래 멀리 가려면 바지런히 준비해야지. 급히 머리를 감고 옷을 입고 필요한 서류를 챙겨 뛰어나왔는데, 꽉 막힌 도로를 보니 숨이 턱 막힌다. 그래 그래. 이런게 출근이었잖아. 어서와 오랜만이지? 전철역까지 가는 버스를 잡아타야 하는데, 앞문까지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싣고 버스는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그 다음걸 탈까, 그 다음걸 탈까, 그 다음걸 탈까 하면서 버스를 여섯대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문득, 사실은 줄곧 들었던 '못 가겠다' 라는 생각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초조했다. 나는 만화 주인공이 아이야. 나는 나를 먹여 살려야할 의무가 있는데. 버스 예닐곱대를 보내느라 이미 출근도 늦.. 더보기
시시한 것들은 눈에 차지도 않았어 △ 산비탈을 헉헉 대면서 오르는데 저 멀리서 개 두 마리가 겅중겅중 달려왔다. 몹시 기쁜 마음에 개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마음먹은 바가 있어 하루에 한 편에서 두 편정도의 글을 꾸준히 (다시) 쓰기로 했다. 오래전에는 아무도 안 시켜도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 붙어앉아 낄낄대며 재밌더니, 언제 이렇게 생각과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 나에게 무겁고 귀찮은 일이 되었나. 이번에 고향집에 며칠 머무르는 김에 마음내어 다락에 올랐다. 예전에 써두었던 노트들을 꺼내어 들추어 보았더니, 확실히 생각과 시각은 지금보다 어릴지 몰라도 더 잘 쓰더라. 좀 많이. △ 내 방에 딸려있는 다락. '다락'하면 왠지 낭만의 대명사 같지만, 실상은 관리가 안되어 칠이 똑똑 벗겨져 계단에 소복히 쌓여있었다. 일주일 전에 강원도 어느 .. 더보기
2014년 9월 6일 : 여름의 시작같은 오늘 △ 세상의 꽃들은 어찌 그리 예쁜지 모르겠어요. 모두 안아보고 싶을만큼. 오늘 서울 날씨는 하루종일 맑음. 날씨 얘기를 입에 올리는 건 좀 꼰대같다고 생각해서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 날씨는 꽤 맘에 들어서 집을 나서자마자 핸드폰에 적어두었습니다. '여름의 시작같은 날씨'.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의, 그 묘하게 밝고 기분좋은 느낌 아세요? 햇살이 걱정돼 외출 전에 썬크림을 좀 과하게 바르면서도, 내리쬐는 햇살이 싫지 않은 날씨. 주변의 모든 것들이 햇살아래 또렷하고,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슬쩍 걸쳐보는 날. (오늘같은 날을 문득 '인디안 썸머'라고 하나? 궁금증이 일긴하는데 아직 가을로 본격 접어든게 아니라서 애매하네요. 그냥 코리안 썸머라고 하는걸로.) 오늘은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에 처음 가보았어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