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게들/우리동네 : 낙원이 되는 서교동교연남연희

연희김밥 : 아무 맛도 없는데 그냥 계속 집어먹는

 

 

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오죽하면 지인들과 길을 걷다가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한 가지 음식만 평생 먹고 살아야 한다면 뭘 먹을래?"라고 질문을 던진 뒤, 1초만에 "난 김밥!" 이라고 외쳐버린다. 고민도 시작하기전에 내가 던지는 명쾌한 '김밥'이라는 소리에 다들 마음이 동요한다. 왜?

 

'한국인의 주식인 밥이 주 재료일뿐 아니라, 각종 야채와 씹을거리가 풍부해서 영양면에서도 충분하고, 간편하다' 는게 나의 주장. 그럼 비빔밥은 어떠냐라는 물음이 돌아오지만, 매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비빔밥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로 깨끗하게 잘라버린다.

 

맛있기도 하지만, 김밥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엄마의 사랑을 가장 닮아있는 음식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유치원 소풍이나 국민학교 운동회, 수학여행... 그런 날들의 설렘은, 부엌 한 켠에서 쭈그리고 앉아 동그랗게 등을 말고 김밥을 싸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비로소 시작되는거니까. 새벽에 번쩍 눈을 뜨고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가면, 달착지근한 밥 냄새와 따끈한 온기와 창밖의 차가운 공기같은 것들이 버무려져 내 입안으로 쏙 들어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엄마곁에 착 붙어앉아 받아먹는 꼬다리의 맛은 또 어떻고!)

 

아무튼 연희동엔 연희김밥이라는 유명한 김밥집이 있다. 연희동 맛집을 인터넷으로 하도 기웃기웃하다보니 이름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상태. 김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어디를 들렀다 오는 길이었지... 갑자기 공기 중에 친근하게 퍼지는 김밥냄새에 나는 갑자기 우뚝서서 "연희김밥!"이라고 외쳤다. 곁에 있던 친구는 "김밥 냄새라고 외치는건 이해할 수 있는데, 브랜드까지 붙여서 외쳐야겠냐. 정말 신기하다." 감탄을. 연희김밥의 위치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찮게 지나치는 중에, 김밥에 유달리 유난한 온몸의 감각이 연희김밥을 포착. 당연히 우리도 줄을 섰다.

(사진 찍을때만 해도 줄이 없었는데, 금새 줄이 늘어나서 골목을 가득 메워버렸다.)

 

가게 안은 사진 촬영금지라 찍을 수 없고, 기본인 연희김밥과 꼬마김밥. 그리고 왠지 안 먹으면 서운할 것 같은 오징어 꼬마김밥 get it. 내 앞의 어떤 여성분은 김밥 3만 7천원 어치를 사가더라. 우와.

 

많은 블로그에서 극찬을 하던 연희김밥은 어떤 맛일까? 두근두근두근두근. 글쎄. 한 입 먹고 "우와 맛있다" 하는 김밥은 사실 아니다. 든 것도 별로 없고, 간도 심심하다. 그렇지만 계속 집어먹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곧 다 먹고 사라진 김밥을 애타게 찾게 될 것이야. 한 번 더 먹어봐야 무슨 맛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맛에 자꾸 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