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머리

여전히 그런 나였으면.

 


사촌 동생이 나를 만나러 서울에 왔다.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접점이라고는 끽해야 1년에 몇 번 있는 명절이고 그나마도 내가 제대로 간 적이 없으니 몇 년만에 한 번 정도 얼굴만 본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핸드폰 메시지로 안부를 물어오는 살가운 동생의 '누나보러 갈게' 라는 그 말이 빈 말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정말로 이번 주말에 나를 보러 온다기에 부랴부랴 녀석이 좋아할만한 공연을 예매하고 식당 몇 곳을 찾아보았다. 자, 와라.

 

어색하면 어쩌지- 라는 염려가 없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 녀석, 굉장히 편했다. 나이 들수록 외삼촌 똑 닮아 서글서글한 눈매하며 싹싹한 성격에 걸죽해진 입담까지. 같이 밥을 먹고, 웃고, 지하철을 타고,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 점심을 먹고 공연장으로 이동하던 길이었을거다. 플랫폼에서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동생이 문득 말을 꺼냈다.

 

/ 누나, 나 누나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 뭔데?

/ 이거 진짜 옛날 얘긴데, 나 여섯 살 때인가... 누나네 집에 놀러간 적 있잖아.

/ 그런가?

/ 2층집 주택이잖아. 누나 방에 초록매실 브로마이드 붙어있었는데.유엔이랑.

/ 오오! 그걸 아직도 기억하나? 맞다 맞다.

/ 나 그때 어디 놀러가는게 너무 좋아서 엄청 신났었거든. 그래서 누나네 간게 너무 좋았어. 그리고 누나 집에서 전기구이 통닭 먹었는데, 누나랑 형이 먹고 더 먹으라고 자기꺼를 계속 나한테 퍼주는거야. 그게 너무 좋았어. 나 그때 식탐이 진짜 많았거든.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는데, 내가 애기여서 응가를 잘 못 가렸단 말이야. 누나집에서도 실수했지. 근데 그 때 누나가 싫은 내색 하나없이 다 닦아주고 치워줬어. 엄마처럼. 그게 도장 찍듯이 너무 기억에 선명하다. 누나도 그때 기껏 초등학생이었을텐데.

/ 난 기억 하나도 안나는데.

/ 난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그 뒤로 친척 동생들한테 누나가 해준 것처럼 하게 되더라고. 걔들이 되게 짜증날 때도 많았는데 그 때마다 누나가 나한테 해준 거 생각하면서 참았어. 그랬더니 그게 다 나한테 돌아오더라. 걔들이 지금 나한테 되게 잘해. 마음이 진짜 돌고 도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너무 찡했다. 어른이 된 나는 이렇게 옹색한데, 머릿 속으로 자꾸만 셈을 하게 되는데 어린 날의 나는 그러지 않았구나. 가진 걸 쉬이 내주고, 마음을 다 할 줄 알았구나, 그 때의 나는.

 

어느날 문득, 10년 전의 인연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진 한 장을 보내온 적이 있다.

/ 고마워!

/ 뭐야 이게 갑자기.

/ 10년 전에 너가 나한테 해 준 선물.

 

작은 나의 마음이 10년이 지나도록 누군가의 마음 속에 남아있었구나. 그래서 그 마음을 되돌려 받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마음은 돌고 도는 것 같아' 하고 사촌동생이 말한 것처럼.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의 작은 마음이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래 남아서 다시 누군가에게로, 누군가에게로 전해지는 거구나.

 

욕심을 좀 부린다면, 나는 여전히 내가 모르는 친절을 많이 베푸는 나였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준 10년 전의 마음, 20년 전의 마음들이 10년 후에 20년 후에 나를 찾아와서, 오늘처럼 나를 코끝 찡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 다시 집으로 내려간 사촌동생에게 온 문자 : 참 고맙고 사랑합니데이~~

'('_')()()() > 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과  (0) 2018.03.30
끝이 가까워서야 끝을 아쉬워하네.  (0) 2018.03.19
허리 업!  (0) 2018.03.06
얼음  (0) 2018.03.02
여행  (0) 201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