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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글을 쓴다는 것

 

며칠 전, 늘 웃는 얼굴의 동년배 아가씨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현씨도 화 잘 안내죠? 어떻게 풀어요?'

 

 

나는 화를 잘 안 낸다. 성격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화를 낼 줄을 모른다. 살면서 화를 '잘' 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 시도때도 없이 화부터 내는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세련되게 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 - 어렸을 때 그 부분에 대해서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 받을 새가 없었다. 어렸을 때 우리집은 가정 불화가 심했다. 밥상의 반찬들이 일순간에 하늘로 솟구쳐 올라 내 입에 들어가있어야 할 김치가 천장의 형광등에 철썩 붙어있는 광경까지는 아니었어도, 밥상은 자주 뒤집어 졌고 엄마는 울었고 나는 조력자를 찾아 밤이건 낮이건 도망다녔다. 신새벽에 외할머니가 달려오기도 했고, 동네 수퍼 아저씨가 달려오기도 했고,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 할머니가 달려오기도 했고, 아무튼 우리집에선 자주 동네 대잔치가 열렸다. 손님을 맞는 나는 대부분 격식있는 내복차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밖으로 '표출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에 - 아부지가 싫어요! 하고 부르짖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겠다 - 나는 살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감정을 누르는 법부터 배웠고, 이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 늘 내 발목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대학 졸업 할 때까지 술취한 아버지를 잡으러 다녔다. (아, 머리야.)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응어리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편이어서, 아버지의 전화를 받을 때면 괜히 짜증이 나고 솟구치는 울분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화를 잘 못내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성장해버렸다. 화를 잘 못 내는 동시에, 잘못 내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나의 화는 부적절한 곳에서 부적절하게 터졌다. 나는 글을 썼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해면 그것이 유일한 감정의 해방구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쓰는게 좋았고 고요히 내 식대로 내 감정을 처리했다. 나는 말이 없는 편이었고, 학교에서도 늘 혼자 책을 붙들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전학생이 내 짝꿍이 되었다. 그 여자애가 나에게 하교길에 떡볶이 사달라는 말을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학교 근처에 떡볶이 가게가 있나? 4년을 다니면서 떡볶이 가게를 몰랐다. 내가 매일 들르는 문방구 바로 옆에 있었다. 전학생이 알려줬다. 그 때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철저히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외갓집에 가서도 외할머니 치마폭에 안겨 응석을 부리기 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애교와는 거리가 먼 아이여서 - 말이 없고 무뚝뚝한 아이가 애교가 흘러 넘친다는 것도 이상하다. 써먹을 데가 없지 않은가! - 손주 온다고 외할머니가 사놓은 바나나를 끝없이 해치우며 골방에 처박혀서 혼자 글을 썼다. 외갓집 골방에는 그 뭐냐, 군용담요라고 해야하나. 거무죽죽하고 두꺼운 짙은 초록색의 커튼이 사시사철 애매하게 매달려 있었는데 그 커튼을 보면서, 그 커튼의 너머로 보이는 나무 잎사귀를 보면서 글을 썼다. 서가에는 외할아버지의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는데 <기억력 향상법>이나 <1분에 영어단어 50개 외우기>같은 두뇌 향상법에 대한 책들이 자잘하게 꽂혀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두뇌향상에 대한 위대한 포부를 지닌 평범한 두뇌의 소유자다. 일곱살 무렵에 읽은 그 중의 한 권에서 읽은 '이태호'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그 책의 저자가 '이태리 호박 = 이태호' 라고 기억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억법을 알려주면서 '당신은 이제 영원히 이태호란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라고 쐐기를 박았는데, 탁월한 기억법 덕분인지 쐐기 덕분인지 어쨌든 이태호는 줄곧 내 머리에 남아있는 아무 의미없는 이름이다. 

 

어느 날인가도 외갓집에 가서 커튼과 커튼 너머를 보면서 글을 쓰고 있었다. 나름 심각했다. 그 때 살금살금 인기척도 없이 내 뒤로 다가온 외할아버지가 어깨 너머로 나의 작품(?)을 관찰하다가 한마디를 건넸다. '뭘 쓰냐?' 나는 흠칫 놀랐다. 묘한 수치심을 느꼈다. 얼른 공책을 덮었다. 그 뒤로 외갓집에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계속 썼다. 매일 선생님께 검사를 맡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양의 일기를 쓰고, 스케줄러를 한 해에 몇 권이나 쓰고,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발을 구르고, 타자기를 치고 - 나의 보물 1호 였는데 엄마가 갖다버렸다 - , 피씨가 생긴 뒤로는 매일 새벽 세 시까지 타자 로봇과 타자 대결을 하고, 듣지도 않으면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잡지에 기고를 하고, 세이클럽을 하고 싸이월드를 하고 블로그를 하고 페북을 한다. 어쨌든 쓴다. 계속 쓰는 것이다. 매일 쓰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반년을, 일년을 안 쓰다가도 결국은 다시 뭔가를 쓰는 것이다. 나는 화를 못 내는 동시에 그저 쓰는 인간으로 성장했으니까.

 

*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 - 이오덕

 

나는 그저 쓰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저 쓴 중에 대부분 나쁘고 - 처음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라고 썼다가 나에 대한 너무나 후한 평가 인 것 같아서 관뒀다. - 간혹 좋다. 간혹. (겸손을 떨치자.) 배우들의 감정선보다 먼저 움직이는 카메라 앵글처럼 나의 글쓰는 법도 성급하다. 머리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그저 쓴다. 이것저것. 쓰다보면 생각은 저 너머에 가있고, 손가락은 자판 위를 하염없이 춤춘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로 비겁한 마침표를 찍거나 에둘러 비공개를 걸어버린다. 고백하자면 나의 블로그에는 공개된 글만큼, 혹은 공개된 글보다 더 많은 비공개 글이 있다.

 

나쁜 글을 계속 쓰는 것도 재주겠지만, 나쁜 글을 계속 쓴다고 해서 글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건 마치 채사장의 <열한계단>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간다고 해서 인간의 성장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이는 성숙을 대변하지도, 담보하지도 않는다. 나이만 똥구멍으로 처먹은 - 실례합니다만 그런 표현이 아깝지가 않습죠, 네네 - 얼마나 많은 겉늙은 미성숙을 숱하게 목도해왔는가. 고백하자면 나는 잘 쓰고 싶다. 그저 쓰다보니 잘 쓰고 싶기도 한 것이다. 기타는 몇 년째 기본 코드만 잡고 있어도 아깝지가 않다. 쑥스럽지가 않다. 나는 기타를 잘 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니까. 잘 칠 필요가 없으니까. 온전히 나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니까. 그러나 글쓰기는 조금 문제가 다르다. 내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특질 중에 시간 대비 노력을 쏟아부었을 때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마 이것일 것이다. 아니라도 시간 대비 노력을 가장 쏟아붓고 싶은 일이 아마 이것이다. 아닌 척 해봤는데, 아닌게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잘 쓰고 싶다. 십년이 걸려도 좋다. 십년 뒤에 노력하지 않은 나를 보며 부끄러워 하는 것보다는 천만배 나은 일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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