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 오, 어떻게 아셨어요?
/ 지난 여름부터 계속 말했잖아요.
선생님에게 베트남 간다는 소식을 알리자마자 예산은 얼마냐, 숙소는 예약했냐, 보험은 들었냐 등의 패키지 질문이 쏟아진다. 아니요! 그냥가요!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난 절대 그렇게 못해요' 부정을 넘어 학을 떼던 그녀의 표정이 다시 둥실 눈코입에 떠오른다. 문득 나의 이런 행동들에 대해 똑같은 표정과 말을 보여주던 오랜 친구가 생각난다.
/ 선생님, 6월 생이죠!
/ 어, 어떻게 알았어요?
/ 쌍둥이자리가 딱 그래요. 즉흥적인거 싫어하고 뭐든지 계획 있어야되고. 계획 변동되는거 끔찍해하고. 쌍둥이자리한텐 안정감이 최고거든요.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옆에 있던 꼬마 아가씨가 '저는요? 저는 황소자리인데!' 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미안, 친한 친구 것만 기억해요. 크흑. 혈액형과 별자리를 동급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별자리가 그저 잡지의 맨 끝장에 딸려있는 부록 정도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동양에서도 사람의 태어난 날과 시를 가지고 운명을 점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분명 어느 사람이 태어난 그 때에는 특정 기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그래서 성리학 강의를 들을 예정이다.)
전형적인 물병자리에다 애니어그램 4번 유형인 나.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굶어죽는 편을 택하'는 유형으로 풀이되어 있다. 계획보다는 그 테두리의 바깥에 더 관심이 많고, 흐름이나 운에 맡겨버리는 편. 어떻게든 되겠지, 잘 되겠지가 모토. '아슬아슬하게' 잘 넘어왔는데 그 아슬아슬함의 존재 자체를 쌍둥이자리는 못 견디는 것 같다.
나의 가장 오래된 벗인 쌍둥이 자리 그녀와의 관계도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화를 걸어 갑자기 여행을 떠나자며 그 다음날 새벽 기차를 타자거나 이상한 섬으로 배를 타고 간다거나 계획도 없이 무작정 부산으로 가서 아무 버스나 타고 뱅글뱅글 돈다거나 했던건 모두 나의 작품이다. 그때는 물병이라거나 쌍둥이라거나 자신의 성격에 대해 인지조차 없을 어린 날들이니, 이제사 생각하면 그녀의 댓발 나온 입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끊임없이 무계획 여정을 함께 해준 건 단지 의리 때문이려나.
어제도 갑자기 캠핑을 가자며, 이제는 남편까지 딸려있는 여인에게
/ 눈덮인 숲에서 별들을 바라볼꺼야!
라고 캠핑장 주소를 찍어주면서 산 속의 오두막 노래를 불렀더니, 그녀의 답장이 바로왔다.
/ 니가 본건 관리사무소 건물이야.
그러나 이에 굴할 물병이 아니지. 물병의 미덕이 무엇인가! 엄청나게 방대한 지식이다. 족히 7년은 넘었을 기억을 더듬어 차선책으로 이번엔 멀쩡한 숲 속의 오두막을 다시 찍어보내주니 그녀가 OK한다. 우리는 비슬산으로 갈 예정. 쌍둥이 그녀는 비슬산까지 미리 운전 연습도 할꺼라며, 예약에 앞서 나에게 숙소 선택권을 주었다.
쌍둥이 : 팽나무 잣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어느 방이 맘에 드니?
물병 : 잣이 몸에 좋아. 잣에 한표. 잣은 먹어봤나?
숙소예약까지 마친 후 쌍둥이자리는 '비슬산에 얼음 축제가 있더라' , 이런 말을 하고 물병자리는 '눈 덮인 산에서 별들을 바라볼거야' 이런 말을 한다. 이런 시스템이 둘 사이에 15년째 가동 중인 것이다.
쌍둥이와 물병이 이렇게 상극인 것 같아도 공통분모는 공기성향의 별자리이기 때문에 잘 통한다. 특히 말이 잘 통하는 별자리들이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경우에는 최고의 짝으로 풀이되어 있다.
굳이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내가 좋아하였던 남성들이 물병자리 - 물병자리는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매력있는건 사실. 한 사람이 몇십가지 주제에 대해서 고루 관심이 있고, 그 중 몇 주제는 전문가 수준이며,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이상한 취미도 꼭 있음. 대화 상대로는 최고. - 이거나, 쌍둥이자리 이거나. 천칭자리였다는 걸 짚어볼 때, 이걸 우연의 몫으로만 남겨둘 순 없겠지요! 세 자리 모두 뿌리가 공기인 별자리이며, 말하는 걸 좋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녀와 눈 덮인 텅 빈 산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기분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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