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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6년 11월 21일 : 취미는 취미, 취미는 사랑

△ 왜 꼭 사고나서 몇 장을 들춰보면 갖고 있던 책인걸 알게 될까요.

 뻔히 알면서도 굳이 환불하지 않고 품에 꼭 안고 있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어쩌나보니 늘 글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밥벌이를 위한 시간도, 밥벌이 이외의 시간도. 밥벌이를 위해서 글을 쓴 적이 있고, 밥벌이에 지친 고단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저는 글의 언저리에 머무려고 생각해본 적이 결코 한번도 없다는 겁니다. 몇 해전, 마음맞는 두셋과 모여앉아 술을 먹는데 어쩌다보니 결론이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나를 더러 하는 말이었어요. 


/ 넌 출판사를 가. 

/ 내가 무슨 출판사야. 전공자도 아닌데.


그런데 그 날밤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후에 돌이켜보니, 나는 출판사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고요. 글을 언저리를 맴도는 일은 그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는 겁니다. 머릿 속으로는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몸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멀끔한 벽의 어느 귀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있습니다. 


몸이 바쁘게 좋아하는 일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요리하는 일.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내 손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어서, 오븐이 없던 중학생 시절에도 엄마 몰래 명절에나 쓰던 커다란 전기팬 따위를 사용해 희멀건한 밀가루 반죽을 굽곤 했어요. 결과는 낭패였지만, 낭패에 낭패를 거듭하면서도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은 드글드글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갑자기 왜 꺼내느냐 하면요, 사회 통념상 거의 절대적인 진리로 굳어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없다'는 명제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어느 한 귀퉁이라도 좋아하지 않고서도 살 수 없습니다. 하물며 회사 옆에 좋아하는 까페가 있다던가 하는 사소한 식일지라도요. 



출판일은 가끔씩 염증이 날 정도로 진절머리가 나지만 - 사실 이런 말을 할 짬도 안됩니다 -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뭐랄까, 빵 만드는 일 돕는 건 지쳤지만 여전히 하루 세끼 빵만 먹을 수 있습니다, 랄까. 그리고 요리도 여전히 좋아하고요. 여전히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걸까요. 훤히 바닥을 다 들여다보면서도 여전히 좋아한다는 것, 여전히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엔 사랑한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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