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4일 : 발렌타인, 어떻게 보내셨나요?
△ 디제잉. 선곡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계속 원성을 먹는 듯.
올해는 초콜렛도 안 만들었는데, 내 블로그는 갑자기 '비터 스윗 나잇' 포스팅 때문에 방문자가 아주 조금 더 늘었고, 퇴근길에 마주치는 남녀커플들의 손에 들린 이쁘장한 종이가방과 그들의 입에 걸린 행복한 미소가(!) 발렌타인 데이임을 확인케하는 요일도 좋은 2월 14일 프라이데이 나잇.
재미있는 자리에 초대받아서 가게 됐는데, 바로 종로쪽에서 금요일 밤 아홉시부터 자정까지 열리는 '개라쥐 파뤼'. 개라지 파티는 처음이라 이거 뭐 복장을 '거러지' 처럼 입고 가야하는건지 어쩐건지도 신경쓰이고 손에 뭘 들고가야되는지도 고민하다가 늦어서 그냥 버스타고 고고. 파티 장소가 모텔을 하나 끼고 으슥한 골목을 꺾어야 하는 곳이라서 제법 무섭더라. 그리고 쿵짝쿵짝! 스산한 골목에서 노래가 쾅쾅 새어나오는 한 곳을 발견. 사내 두명이 그 앞에서 담배를 빨다가 그 앞에서 어정쩡 서있는 나를 보고 들어오란다. 한 눈에 척 봐도, 초콜렛과는 거리가 먼 사내들의 소굴 같아서 - 욕은 아닙니다 - 입장을 사양하다가 너무 추워서 일단 들어가서 일행분을 기다리기로.
사실 파티 주최자 분들은 TV에도 종종 나오고, 여기저기 언론보도도 많이 된 바른 청년 기업가들인데, 이들이 여는 파티라고 해서 굉장한 정장까지는 아니지만 좀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예상했던 것 같다. 그냥 탁자위에 과자 봉지 수북히 쌓아놓고 맥주캔 까고, 화장실 변기에는 키친 타월이 턱 올려져있는 그야말로 동네 친구들 모임이었다. 괜히 긴장했구만.
그래도 낯을 좀 가리는터라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으니 - 음악은 계속 틀어주는데, 클럽처럼 북적북적 한것도 아니고 작고 낯선 공간에서 혼자 비트에 몸을 맡길 여유와 배짱은 없는 것이죠, 나란 녀자 -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주시네. 아무튼 일행분이 뒤늦게 도착하셔서, 주최측 청년 한 명과 마중을 나갔다.
"저, 티비에서 본 것 같아요. 다큐인가 이런거에서..."
"저희가 뭐 언론보도도 많이 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래서 바른 청년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요,
저희도 다 똑같아요.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제가 여기올때 모텔 끼고 왔는데 무섭더라고요. 골목이."
"그 모텔이 진짜 좋은 모텔이예요. 제 경험상, 외국인까지 받는 모텔은 어쩌고 저쩌고..."
처음 보는 귀여운 청년의 모텔 감상평을 들으면서 일행분을 모셔왔고, 전기 난로 불빛을 조명삼아 다들 벌건 식육점 고기같은 상태로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술마시는 곳으로 다시 들어왔다. 우두커니 서서 맥주 몇 모금만 홀짝거리다가 돌아왔지만, 아무튼 서울 남자들은 하나같이 매너나 스윗함이 찰지게 몸에 배어있는데, 인생의 1/4를 경상도에서 경상도 남자와 치고박고 자란 나에게는 아직도 신세계다.
(*) 버스 같이 기다려주신 공돌이 분, 감사합니다. 초면에 버스오는거 잘보고 있으라고 해서 미얀.
(*) 갑자기 회사 대표님이 얼마전에 했던 얘기가 생각. "너는 남자에 도통 관심이 없니?"
내가 여자 허지웅처럼 보이기 시작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