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오늘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배우, 그레타 거윅 주연의 <매기스>가 개봉하는 날이다. 조조를 봐야겠다고 나름 벼르고 있었는데 머리를 감고 말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이 좀 빠듯해져서 조조를 포기하기로 했다. 3년전인가, 극장에서 <프란시스 하>를 보고 완전히 그녀에게 빠져버렸는데 그 뒤의 작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가 맡는 역할도 사실은 하나같이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녀는 그녀 자신이라는 역할을 맡은 것일지도.
요즘 임보라를 듣는다. 임보라 씨 공연은, 2014년 여름에 예매를 해두었다가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비오던 날 깔깔대며 웃다가 그만 공연이 잊다는 사실을 잊어버려 가지 못했다. 3만 얼마짜리 공연이었는데. 제일 앞자리였는데. 젠장. 남자친구를 사랑하던 그 무렵에는 '공연 따위 뭐' 라는 생각을 했으나 2014년 가을로 접어들며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게 되고서는 줄곧 티켓값이 아깝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며칠 전에 임보라씨 연주를 들었다. 나는 좀 울었나. 임보라 씨는 참 예뻤다. 각진 얼굴이 예쁠 수도 있다는 걸 며칠 전에야 알다니. 내가 남자라면 공연이 끝난 후 대기실로 들어가서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그녀가 이미 공개해 놓은 전화번호를 내 핸드폰에 저장시켜 놓고는 '공연 잘 들었다'며 날씨나 유행하는 드라마같은 쓸데없는 얘기를 찔끔찔끔 늘어놓다가 눈부시게 데이트 신청을 할텐데.
해야겠다, 해야겠다,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드디어, 겨우, 마침내, 비로소, 간신히 생각의 영역에서 몸의 영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그간 써온 원고를 정리하는 일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무얼 할꺼냐는 사람들의 반쯤 걱정이 담긴 물음에 '원고 정리 할거야' 라고 허세를 반쯤담아 말했다. 원고는 원고일 뿐인데, 왜 나는 원고라는 단어에 허세를 담는가. 허세를 남용하고 있다. 원고를 남용하고 있는건가. 에라이.
어쨌든 나의 걱정 아닌 걱정은 '그간 써둔 글이 너무 많아서 정리만 해도 몇 달은 걸리겠네' 였다. 이 걱정이 나를 몇 년간 옭아맸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쓸만한 글이 별로 없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에세이 집 몇 권을 훑어보며 '음 이정도 원고량이면 되겠네' 하고, 나는 이미 준비된 인간이라고 우쭐하던 어깨뽕이 쑥 들어갔다. 좀 머리가 아파졌다. 나의 어떤 글을 읽다가는 너무 유치하여서 부끄러운 나머지 배가 아팠다. 맙소사. 책의 인기는 작가의 거품 낀 인지도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슬쩍 깔보고 있던 이들의 글들도 책을 사서 곰곰 읽어보니 하나같이 좋았다. 맙소사. 나는 시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어깨는 땅으로 꺼지고, 머리는 아프기 시작했고, 부끄러움으로 배가 밸밸 꼬이는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