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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의 롯데월드
우주둥이
2016. 12. 8. 17:57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몽글몽글해 질 때가 있습니다.
부사
- 1 .덩이진 물건이 말랑말랑하고 몹시 매끄러운 느낌.
- 2 .[북한어] 구름, 연기 따위가 동그스름하게 잇따라 나오는 모양.
- 3 .[북한어] 살이 올라서 포동포동해 보이는 모양.
- 4 .[북한어] 생각이 조금씩 자꾸 떠오르는 모양.
- 사전에서 잠깐 찾아본 몽글몽글은 어쩜 뜻도 참 예쁘네요. 자, 다시 몽글몽글로 돌아가서 몽글몽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 질 때라. 너는 퍽이나 자주 그런 사람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 밖에 없지만 어릴 때 저는 온통 일백퍼센트 몽글몽글한 사람이었거든요.
- 봄의 당도 직전에 공기에서 맡을 수 있는 들큼한 냄새. 새로 산 노트의 깨끗한 첫 장. 그리고 오늘처럼 어린 날을 문득 떠올리며 나는 몽글몽글해집니다.
- 오늘 나는 롯데월드로 출근을 했습니다. 유명 연예인의 팬 싸인회가 있었어요. 물론 싸인을 받으러 간 건 아니고,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현장 관련된 일을 맡았습니다. 무대 옆에 설치된 부스에서 노트북 세 대가 돌아가고 1번 카메라, 2번 카메라, 큐싸인이 목소리를 타고 넘나드는 가운데 노트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 뭐랄까. 회사원이란 참 신기해요. 회사원은 어느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바뀌는 동시에 직함이 달라지고 해야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기도 하거든요. 15년동안 기타를 쳤다던 한 때 나의 친구는 '나는 엑셀도 할 줄 모른다' 며 웃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좀 놀랐어요. 한가지 일을 줄곧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나머지 일을 전혀 못 해버리는, 사실은 안 해버리는, 그러니까 뭐랄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쿨함이 깃들어 있는거구나. 젠장. 나도 쿨하고 싶다, 이런 거랄까 .피식. 왜 유명 작가들은 오로지 글만 쓰고 나머지는 하나도 할 줄 모른다고 하잖아요. 할 줄 모른다는건 하기 싫은거죠. 안해도 되는 거고요. 뭐 그런, 쿨함이랄까. 회사원인 나는 중국어도 하고 엑셀 자격증도 있고 시키면 이것저것 한단 말입니다. 하기 싫어도 출근을 하고 할 줄 몰라도 뭐라도 붙들고 앉아있을 때가 많지요. 오늘도 쿨할 수 없는 회사원의 자격으로 작은 부스에, 생전 처음 써보는 맥북을 부여잡고 앉아있었고요.
- 행사는 잘 끝났습니다. 잔뜩 긴장하긴 했지만 잘 끝났습니다. 무거운 어깨를 털어내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데, 오늘 같이 동행했던 팀장님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저 회전목마타고 복귀해도 될까요?' 팀장님은 아마 농담인 줄 알았을테지만 나는 꽤 진심이었는데.
- 어제 오랜만에 쓴 일기에 회전목마 그림도 그려놨는데.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롯데월드를 처음 가봤습니다. 롯데월드라니. 꿈과 희망의 롯데월드라니.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요. 김하수 라는 얼굴이 꽤 크고 네모진, 그러니 이목구비는 큼직하니 잘생긴 반장이 칠판 앞에 서서 수학여행의 장소는 '롯데월드냐, ** 산이냐' 를 놓고 작대기를 긋고 있었거든요. 아마 선생님 회의까지 거쳐 간신히 롯데월드로 목적지가 결정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숨막히는 며칠이었어요. 복도에서 누군가가 눈만 마주칠라치면 '우리 롯데월드 간다매?' 얘기 뿐이었으니까요.
- 초등학교 6학년 때 간 롯데월드를 난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난생 처음 보는 회전문에 가방이 끼여 엄마가 새벽부터 고이 싸준 김밥이 다 터졌고, 친구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나는 회전문에 가방과 함께 갇혀 꼼짝없이 얼마간을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찌그러진 김밥으로 친구들과 점심을 먹을 수 없었던 나는 꿈과 희망에 부풀어 올라탔을, 나를 롯데월드로 데려다 준 빈 버스에 올라 혼자 도시락을 열었습니다. 왜 하필 또 스티로폼 도시락이었는지, 쌌는지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눌린 김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 좋아하던 회전 목마도 탔는지, 안 탔는지 기억에 없고 오로지 ''롯데월드 = 회전문에 눌린 김밥' 이란 서글픈 공식 하나를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 그 뒤로 어른이 되어서 스무살 무렵에 롯데월드를 다시 갔어요. 그 때는 분명히 회전목마를 탔습니다. 회사로 복귀하면서 팀장님에게 또 이런 말을 했어요. ' 저 어릴 때 수학여행을 여기로 왔는데, 어른이 되어서 여기에서 일도 하네요.' 하고요.
- 여전히 회전목마가 타고 싶은 나는 오늘따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빈 버스에서 찌그러진 도시락을 안고 울었을 작은 친구의 손을 잡고 회전목마를 함께 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젝스키스의 <커플>이 다시 나왔네요. 중국집가면 짜장면 아니면 짬뽕인 것처럼 모든 소녀들이 HOT 아니면 젝스키스의 팬이었던 시절, 나는 HOT의 팬이었지만, 그래서 젝스키스를 좋아하면 배신자가 될까봐 짐짓 드러내진 못했지만 <커플>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TV를 보면서 열심히 춤도 따라추고 말이죠. 난 고지용 씨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후훗)
- 예전보다 지금 네가 더욱 괜찮을꺼야♪
- 난생 처음가본 꿈과 희망의 롯데월드에서 꿈과 희망은 다 짓눌리고 회전목마도 못 타고 서럽게 울었던 열 한살보다 지금 내가 다행히 조금 더 괜찮은 거 같긴 해요. 좀 더 단단해졌달까. 그때보다 화도 덜 내고 엄마아빠를 많이 무서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개겨요.)
- 여자들은 한번쯤 받고 싶은 프로프즈 장면을 떠올려 본다고 하던데요. 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다가 지금 딱 생각이 났어요. 나 회전목마 태워주는 남자랑 결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