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머리
당신의 모서리
우주둥이
2016. 10. 10. 22:28
나는 옛날에는 무슨 사나이 자존심인지 뭔지, 아무리 힘든일이 있어도 아무한테도 이야기를 안하고 꾹 눌러담고 지냈더랬다. 아주 좋아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져도 방문을 닫고 끅끅 울었고, 마음이 괴로와 어쩔줄 모르는 날에도 테레비 앞에 무릎꿇고앉아 깔깔거리며 밥을 먹었다.
오늘 아침에 나는 문득 평소에 잘 연락도 하지 않던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다. 좋아하던 친구와 헤어졌노라고, 다정하고 좋은 아이인데 내가 다 그르친 것 같다고, 젊어서 아픈거겠지만 나는 이럴때마다 너무나 숨이차고 힘이 들어서 더는 못 버티겠노라고 했다.
딸 가진 어머니는 '뺀질뺀질 속물처럼 굴지 않아 다행이지만, 이제는 좀 나이에 맞게 굴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늘 좋았다. 나처럼 갈팡질팡 하지않고, 올곧은 어디론가를 향해 늘 반짝이는 것 같아서, 나 대신이라도 근사할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았다. 어머니는 '별은 반짝이지만, 그 곁의 사람은 외로울거야.' 라는 말도 하셨다. 이제 하늘의 별대신 디딘 땅을 보라고 했다. 나같이 얼빠진 애들은 이제 그만 고개를 숙일때라고.
나는 누군가를 오래 좋아하다가 지친 마음을 이제야 겨우 여미겠구나 생각했는데, 나의 욕심일 뿐이었구나. 그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당신이 자꾸 내 바닥을 들여다보게 한다'라고. 난 그 말이 참 아팠다. 함께 있으면서 상대를 비참하게 만들고픈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나도 꼭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뭐랄까. 좋아하던 친구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내 스스로 나의 옹졸함을 새삼 들여다보고 그 밭은 깊이에 깜짝 놀라고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잘해보자고 생각했거늘! 이번에는 좀 어른처럼 행동해보기로 다짐했거늘!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말고 사랑하기로 결심했거늘! 나를 낳은 어머니 말씀대로 '얼빠진 어린' 나는 여전히 어린 사랑을 한다.
낮에 뜬 달은 희미하고 아득하다. 누군가를 느릿느릿 좋아하다가 바쁘게 정리를 해야하는 순간에는 늘 낮달같은 기분이 든다. 물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