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둥이 2016. 7. 16. 22:34

나는 파스타 중에 알리오올리오를 제일 좋아한다. 예전에는 줄곧 크림 파스타만을 고집했는데, 그 땐 어느 레스토랑을 가도 선택이 토마토 or 크림 밖에 없었다. 메뉴판에 오일 파스타의 영역이 등장한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으리라. 꽤 오랜 세월동안 '니끼함'을 담당하며 수많은 여성들의 혀와 위장을 어루만져준 크림 파스타여. 오일 파스타가 등장하며 너에게 이렇게 말했겠지.

"꺼져. 이 구역의 느끼함은 나야." (가십걸에 나오는 유명대사다. 그때 마침 본방을 보고 있던 차에 '이 구역의 미친뇬은 나야!' 라는 대사를 듣고 목캔디를 강판으로 갈아 떠먹는 듯한 통쾌함을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장 핫한 유행어 중 하나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지만.)

음식 버리는걸 싫어하면서도, 왜 그렇게 툭하면 대량구매를 하고 썩혀 버리는 것이냐. 열심히 먹을 것 같던 아보카도도 10개나 사놓고는 -하나에 2천원을 훌쩍 넘는 고급진 녀석이다 - 딱 두개 먹고는 죄다 썩어서 버렸다. 이 버릇을 고쳐야 할텐데.

며칠전에 족발먹고 편마늘이 생겨서 알리오올리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늘 양이 넉넉치 않아서 간단하게 테스트만 해보는걸로.

올리브유를 둘러주고 마늘을 튀기듯이 볶아준 다음, 미리 삶아둔 면과 면수를 넣고 다시 볶아준다. 소금, 후추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나는 레몬페퍼를 써봤다. 현미 파스타를 사용할 때는 삶을 때 살짝 덜익힌 뒤, 볶으면서 익히는게 포인트. 처음 써보는 현미 파스타라 삶을 때 이미 푹 익혀버렸더니 볶으면서 지들끼리 좋다고 부둥켜안고 난리가 났다. 떼놓는다고 고생 좀 했음.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는데 꽤 맛있어서 '뭐지, 나  진짜 요리 천재인가' 라는 고민에 잠깐 빠졌으나, 피닉스에 계신 낭군님이 비웃음 이모티콘을 하사하심. 고맙다.

보통 레스토랑에 가서 알리오올리오를 주문할 때는 면을 페투치네로 꼭 바꾸는 편이다. 면이 넙적해서 기름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달까. 내가 먹어본 최고의 파스타는 연희동 <콰이민스 테이블>의 알리오 올리오다. 이쾌민 씨라고, 미술 공부하신던 분이 운영하던 가게인데 공간도 참 정갈하고 요리도 훌륭했다. 갑자기 어느새부터 맛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하루는 '주방장 바뀌셨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 뒤 얼마안가 그 자리에 조잡한 주점이 생겼더라.

오늘같이 비오는 날엔 콰이민스 테이블에 가서, 면을 납작한 것으로 바꿔 주문한 알리오올리오를 입안가득 우물우물 씹으면서 빗소리를 듣는 것도 꽤 좋을텐데. 아, 맥주 땡기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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