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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그리고 여름

우주둥이 2016. 7. 12. 13:39




여름이다. 덥다. 응당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하지만, 내 인생에 계절만큼은 네 가지나 필요없다. 사게절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극명하게 덥고 또 추운 여름과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에 좀 더 가깝게.) 이 계절에는 그리 그리울 것도 없다. 여름에만 나는 참외와 수박같은 과일들이 그리워 애달은 적 없고 -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바나나가 좋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껍질이 두꺼워서 좀 위생적으로 느껴진달까. 결정적으로 칼을 댈 필요도 없고. 껍질에 지퍼가 달린 느낌이야! - 호빵이나 붕어빵처럼 겨울 특유의 간식거리들도 딱히 뭐. 그러고보니 호빵은 먹어본지가 까마득한 옛날 같구나. 옷은 또 어떤가.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옷을 구비해야하며, 둘 사이에 잠깐 들어있는 수박바 끄트머리에 달린 초록색 아이스크림같은 느낌의 봄과 가을을 위한 옷도 꼭 필요하다. 게다가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다른 색채의 계절이기 때문에 결국 옷만 해도 네 가지의 분류가 필요하단 말씀.




이 계절엔 아무리 예쁜 옷을 걸쳐도 집을 나선지 두어시간이면 땀이 묻기 때문에 예쁜 옷을 입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입은 날마다 즉시 빨아야하고. 결정적으로 나는 여름과 겨울에 썩 어울리지 않는 가엾은 존재다. 아침에 잠깐 여름의 태양을 쬐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벌겋게 부어오른다. 내가 이렇게 연약한 여성이었던가!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를 보며 새삼 생각한다. 게다가 겨울이면 또 어떤가. 손끝에 동상을 달고 살지 않는가. 나는 추운 것이 정말 싫다. 뼛속까지 얼어버리는 기분이다.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아직까지 한국의 여름과 겨울에 붙어있는걸 보면 또 살만한가, 싶기도 하고. 




여름의 뜨겁고 끈적한 공기에 짓눌려 거리를 걸어다니다가 24시간 에어컨을 빵빵 틀어대는 상점들 앞을 지나면 그렇게 상쾌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미안한 마음을 지울수가 없다. 상쾌한 동시에 머리 한 구석에서 뭉게구름이 재빨리 피어난다. 북극곰이 디딜 얼음이 없어 바다에 자꾸만 푹푹 빠지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에어컨의 프레온 가스가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것은 이미 지나치게 잘 알려진 상식이다. 중고등생때부터 숱하게 들어왔고, 그때마다 시원한 동시에 '이렇게 시원해도 되나' 싶어서 미안했다. 그런데 몇년 전, 짧게 어떤 책을 본 적이 있다. '지구는 지구 나름의 생애주기가 있을 뿐, '하찮은' 인간의 어떠한 행동이 지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게 가당키나 하냐' 는 논리였다. 그 이론과 더불어 '다시금 두꺼워지고 있는 지구 오존층''에 대한 연구결과는, 그러니까 여름에 잠깐 에어컨을 쐬면서도 미안함을 쥐어짜내는 이런 작고 작은 인간 1인에게 일말의 위안이 되어줬다. 에어컨의 프레온 가스와 지구 오존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니. 그러면 여름마다 북극곰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거였다니. 




요즘 자꾸 소중한 이에게 화를 낸다.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확증되진 않았지만) 에어컨과 관계없는 지구 오존층처럼 나는 그냥 어쩌면 화를 내고 싶어서 화를 내는게 아닐까? ' 그가 나를 야마돌게 한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마다 왠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지만 - 그도 아마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여자가 내가 알던 여자가 맞나. - 어쩌면 나는 그냥 화를 내고 싶어서 화를 내는게 아닐까. 하나부터 열까지 무턱대고 엄마에게 화를 퍼붓기 바쁜 사춘기 소녀처럼 말이다. 여름과 겨울처럼 뚜렷한 그 무엇을 싫어하는 내 맘속에는 늘 '미지근' 에 대한 갈망이 있다. 너무 덥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고 그냥 안온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낼 땐 누구보다 내가 가장 힘들다. 나의 뭔가 들끓는 상태를 견디기가 혼곤하다. 늘 안온하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가열차게 끓어오르는 뚜껑을 꾹 누를 때도 있는데, 언제 한 번은 '마음의 소리'를 듣고야 말았지 뭔가. 마음이 이렇게 내게 외쳤다. "야 이 주인새끼야!!" 라고.




달라이라마나 틱낫한, 또 누구였더라. 아 디펙초프라, 그리고 루이스헤이.... 그리고... 또... 아무튼 이 시대의 선구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상처를 '받기로' 선택한 것 뿐입니다' 라고 말을 한다. 마음이 좋을 때는 어깨를 으쓱해보이지만, 마음이 이렇게 개똥밭에 구를 때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노력했으면서 이게 뭔가.' 라는 자괴감에 휩싸이고 만다. 흑흑. 



내 오존을 넓히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왜 화를 붙들고 싶어할까. 여름이다. 덥고 또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