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3일 : 미니별로와 햇빛 알레르기
아무리 바빠도 한마디는 해야겠다.
나는 오늘 아침, 인류 최초로 네모난 바퀴를 약 20여분간 굴리며 목적지에 겨우겨우 다다랐다. 가까운 일주일 내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피곤과 식은땀에 헐떡였고, 오늘같은 날은 집에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 내내 맘졸이며 뜀박질을 해대야 하더라도 - 너무 힘들기 때문에 달음박질로 버스정류장을 향할 때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를 떠올린다. 지금은 '타임리프' 중인거라고, 더 박력있고 근사하게 뛰고야 말리라! 라는 심정으로 - 버스를 타고 안온한 몇 분간만이라도 누리고 싶었다. 언제 청소했는지 알리가 없는 에어컨 바람을 퐁퐁 쐬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침은 늘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법. 토마토를 벅벅 갈아 믹서기째로 가방에 넣고는 - 그래요, 전 이런 사람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어제 비가 듬뿍내려 쫄딱 젖은 자전거 안장을 꾹 눌러보았다.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듯 하지만 분출은 하지 않을 정도. 괜찮겠지? 사실 괜찮지않다 하더라도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안장에 올라타는데 아 글쎄.
뭔가 이상하다? 자전거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 한바퀴 굴릴 때마다 드득! 하고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를 낸다. 드디어 오고야 만 것인가. 이 자전거로 말할 것 같으면 작년 여름에 아는 분이, 필요는 없고 팔기는 애매하고해서 나에게 버린 것인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에라 가져가라' 는 심정으로 반년 넘게 바깥에 아무렇게나 방치, 예상대로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미니벨로다. 나는 나름 이 녀석을 속으로 '미니별로'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달릴 때마다 몹시도 요란하게 덜컹이는 것이 기어코 어느 날은 달리다가 자전거가 공중분해 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녀석 위에 올라탈 때마다 불안감과 공포, 그리고 '미니별로'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감이 뒤범벅되어 두둥실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황희 정승의 '누렁소 검은소' 에피소드(feat. 밭갈던 농부)를 어린 나이에 접하지 않았던가. 나도 배운 여자라 이 녀석을 소리내어 대놓고 '미니별로'라고 부르진 않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이렇게 바쁜데, 내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인지 한바퀴 득! 한바퀴 득! 한바퀴 득! 내 장단에 맞추어서 추임새를 넣지 뭔가. 아침부터 이 녀석과 나는 비트를 찍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딱히 다른 수가 없어 겨우 끌고 나왔지만 정말로 도로 위를 달리다가 공중분해가 될 것 같았다. 드드드드드드드득! 이 녀석이 분해되던지 내 이빨, 혹은 척추 뼈가 털리던지 둘 중의 하나일텐데 나는 드드드드드득! 떨리는 자전거 위에서 드드드드드드득! 함께 떨었다. 어떡하지? 낡아빠진 자전거 한 대에서 탱크 모는 소리가 나니 주변에서 쳐다보는 시선은 서비스. 미쳐버리겠구만. 속도도 걷는 속도와 비슷했다. 안 나간다. 자전거를 버리고 싶었으나 일단 나도 목적지까지는 가야할 것 아닌가. 자전거를 몰면서 도로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 어떡하지!!! 나 어떡하지!'
'일단 가는데까지는 가야지 어떡해!'
'허리 나갈 것 같아!'
'가다가 안되면 버리자!'
나는 도로 위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혼자 묻고, 또 혼자 답했다. 이것이야말로 네모난 바퀴로구나. 드드드드드득! 득득드드드드드드드드득! 내 앞을 유유히 가로지는 쌀집 아저씨의 자전거가 부러웠다. 지금이라도 버릴까, 를 약 20여분간 100번은 고민했을꺼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득! 인류 최초로 네모난 바퀴를 - 최초가 아닐 수도 있다. 역시 찾아보니 http://blog.naver.com/maeng2co/220691225550 네모바퀴 자전거가 있네 - 굴리면서 이빨과 척추가 다 나가버린 한 여인의 아침.
마침 오늘은 바빠 깜빡하고 가디건을 걸치지 않았더니 팔뚝이 시뻘겋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피부가 굉장히 약한 편인데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조금만 햇빛을 쬐도 피부가 가렵고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오른다. 네모난 자전거와 비트를 찍어내며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늘 나와 비슷한 시간에 퀵보드를 타고 내 뒤를 바싹 추격하는 일명 '홍콩 할매 귀신'이 오늘은 가뿐하게 나를 추월했다. 드드드드득 땅 긁는 소리를 내며 나를 급하게 따라붙는 소리에 대한 공포는 가히 놀라운데, 퀵보드를 타는 그 남자를 '홍콩 할매 귀신'이라 이름 붙이고 늘 마음 속으로 그와 결전을 벌였다. 내가 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정의는 승리해야하기에. 아침에 홍콩 할매 귀신을 마주할 때마다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의 심정으로 허벅지가 터져라 바퀴를 굴렸다. 딱히 홍콩 할매 귀신이 지구 평화를 파괴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지만서도.
그러나 이렇게 어이없게 그간 쌓은 승점을 고스란히 잃어버리다니. 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