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2016년 5월 25일 : 메이 크리스마스

우주둥이 2016. 5. 25. 09:30

△ 필카의 위엄 






잊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산티아고로 떠나는 날이 대략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벽 5시 반에 보내온 어머니의 깨톡!을 보고 알았다. 어버이날을 겸해 고향에 내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가 출국하는 날 당연히 배웅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홍대쪽에 유명한 크림빵- 그래요, 푸하하 크림빵 맞습니다! - 을 공항에 좀 사가겠다 했더니 40명 정도가 같이 출발하니 40개를 다 사오라는 것이다. 아니, 내가 무슨 빵수르여? 돈은 차치하고라도 왜 어머니와 일면식도 없는 40명의 빵을 다 사가야 하는건지 납득이 가지 않아 '내가 왜?' 라고 반문했더니 어머니가 길길이 화를 내며 '안 사올꺼면 오지마라!' 를 남발, 나를 발로 찰 기세였다. 아니 ,무슨 비행기가 결혼식 가는 대절 버스인줄 아시나. 성지순례 가시는데 공항에 크림빵 딱 2개만 사가서 4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해봐? 어머니는 이상한데서 똥고집을 부리는데 난 그럴때마다 속된말로 야마가 돈다. - '야마돈다'는 말의 어원을 알고 싶어서 살펴보아도 딱히 이렇다할 말이 없네. '야마'가 일본어로 산山이라는 뜻만 나와있다. - 일단 사가는 것으로 어영부영 급하게 합의는 보았으나 사실 안사갈 속셈이 서른 퍼센트 정도 있었다. 낄낄. 



그런데 갑자기 새벽 5시 반에 뜬금없이 '빵을 사오지 않아도 된다' 라는 고백을 하시니, 여자의 마음은 여자도 알다가 모르는 것이라. 이게 진심인지, 아니면 딸년이 눈 뜨자마자 '빵'에 대한 각인을 한 번 더 시키려는 의중인건지. 100% 장담하는데, 여자들의 말은 한번쯤 걸러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자들은 진심을 배배 꼬아서 전달하는 경향이 아주 탁월하다. 고백하자면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김여사♡] [오전 5:34] 다음주 금요일에 공항에 나오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을테니 무리해서 오지마라~

[김여사♡] [오전 5:36] 빵도 사오지마라.넌 돈들여서 사오는데 사람들이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을것 같다.

[김여사♡] [오전 5:38] 그자?

[꽃반지♥] [오전 6:54] 진심이가 그짓말이가

[김여사♡] [오전 7:07] 그냥 오면된다

[김여사♡] [오전 7:08] 안와도되고

[꽃반지♥] [오전 7:08] 근데 왜 난리폇슈?

[꽃반지♥] [오전 7:09] 안사올꺼면 공항에 오지 말라느니

[김여사♡] [오전 7:10] 난 지금까지 늘 우리편(?)끼리 여행을 다녀서 예의상 내딸이 인사를 나오면 그래야한다고 생각을 했었나봐

[꽃반지♥] [오전 7:10] 그사람들이 다 어무니 친구면 내가 당연히 사간다캣지?

[김여사♡] [오전 7:12] 근데,,나 여행가도 되는 거 맞제?

[꽃반지♥] [오전 7:12] 안될건 뭔데?

[김여사♡] [오전 7:12] 왠지 아빠한테도 미안해지고,,ㅎㅎ

[꽃반지♥] [오전 7:12] 안가면 마음이 편하나? ㅋㅋ아쉽지

[김여사♡] [오전 7:13] 날씨도 더운데,,혼자 고생하는거 뻔히 알면서 모른척(?)놔두고 가려니 

[꽃반지♥] [오전 7:13] 몸건강하고 기회될때 부지런히 다니는게 정답

[꽃반지♥] [오전 7:13] 어무니가 여행 안간다고 아부지가 고생 안하는거 아니자나

[김여사♡] [오전 7:14] 그래. 나도 내한테 이정도 기회를 줄  자격은 되제?ㅎㅎ

[꽃반지♥] [오전 7:14] 어무니가 가든 안가든 아부지는 일똑같이 하는데~~ 어무니가 여행가면 아부지가 보람이 있겠지? 마누라 산티아고 정도는 보내줄수있는 남편

[꽃반지♥] [오전 7:15] 당연히 그정도 되시고요, 마님~  좋은 사위 얻어서 더 자주 보내드릴게요

[김여사♡] [오전 7:15] 안그래도 너거 아빠는 자기 능력이 그 정도는 된다고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는것 같더라.ㅋㅋ

[꽃반지♥] [오전 7:16] 그니까 아부지가 여름에 고생하는데, 뿌듯해하는게 낫겠나 아니면 그냥 하는게 낫겠나

[꽃반지♥] [오전 7:16] 어무니는 아부지 뿌듯하게 해주려고 여행가는겨~~ 여행은 뭐 편하나 가면 고생인데~~

[김여사♡] [오전 7:18] 그래~~고마워

[꽃반지♥] [오전 7:18] 아부지가 보내주고 어무니가 가는데 뭐가 고맙노 ㅎㅎ 맘 편하게 가는게 아부지한테 좋은일 하는겨^^




이름 모를 미래 사위, 보고 있나. 지금 내 능력이 쪼까 부족하니 자네 어깨에 기대보려 하네. 아무튼 괜히 여행을 앞두고 가족들 생각에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드는 어머니 마음. 그래서 나한테 빵 사오지 말라는 깨톡을 새벽에 보내셨나보다. (근데 진짜 이쯤되니 안 사가면 안될 것 같다... 문득 출발 시간을 확인해보니 밤 11시 10분. 그래요, 어머니가 이겼어요. 빵 사다드리리다.) 




'아버지에게 멋진 남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라는 멋진 솔루션을 제시한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