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2016년 1월 24일

우주둥이 2016. 1. 24. 18:55

 

 

△ 홍대 수카라

 

 

 

 

연이은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정말로 건물을 한발짝 나서서 숨을 훅 들이마시기만 해도 콧물이 버서석 얼어버려서 코 안에서 서걱거린다. 오래전 하얼빈에서 일년간 유학을 한 적이 있는데, 늘 영하 40도를 밑돌던 그 때의 기억이 생각났다. 건물을 한발짝 나서기만 하면 속눈썹에 눈이 하얗게 내려버리는 그때의 추위. 건물 안에 온도계가 비치되어 있어  '오늘은 몇 도인가' 하며 매일의 기온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사실 영하 38도나 42도나 크게 의미없는 숫자임에 불과하지만 늘 그렇게 했다. 추운 건 그냥 추운 것이다. 서울의 체감 추위가 영하 17도 20도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하얼빈의 겨울보다 두 배나 덜 춥다 한들 추운 건 그냥 추운 것이다.

 

 

오늘은 아침에 영화를 보러갔다. 코 안에서는 콧물이 얼어서 뒹굴고 찬바람에 눈물이 주륵 터져나온다. 추위를 비집으며 영화를 향해 걷다가 '내가 무슨 대단한 영화광이라고!' 싶다. <빅쇼트>라는 영화를 봤다. 모기지론과 서브프라임과 공매도, CDO에 대해 두시간 넘게 블라블라하는 내용이다. 나는 꽤 재미있게 봤다. 좋은 머리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주인공들 앞에서 돈의 속성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영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수카라에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끼니를 먹었다. 매일 이렇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매일 이렇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가상의 남편과 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매일 어떤 끼니를 차려주어야 하나. 곰곰.

 

 

서울에 온지 5년차이다. 요즘은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제는 한국을 벗어나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늘 지루한 걸 못견뎌 왔으니까. 아직도 서울의 곳곳을 사랑하고 여전한 어떤 새로움이 나를 설레게 하지만 완전한 시골로 내려가거나 완전한 외국으로 가고 싶다. 그렇게 태국을 그리워하는 나를 보며, 아예 태국가서 살라는 누군가들의 말처럼 태국에서 방 하나 빌려서 - 서울보다 훨씬 싸다 - 유유자적하며 글이나 끼적여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우스운 사실은 당분간의 회사 생활을 몹시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9 to 6. 새벽에 벌떡 일어나서 어떤 여유도 없이 머리를 벅벅 감고 추운 공기 속에 덜 말린 머리를 내던져야 하는 아침, 깊숙한 지하로 내려가서 쫓기듯이 전철을 탔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오를 기세로 위치에너지의 격동을 거세게도 경험하는 아침, 모니터를 들여다보느라 눈이 뻑뻑하고 건조한 아침을 요즘 좀 좋아한다. 이 아침을 위해서 수수료를 반틈이나 물고 홍콩행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일주일쯤 뒤에 홍콩으로 날아가서 생일을 홍콩에서 만두나 씹으며 보냈을텐데. 조직에서 내게 주어진 태스크를 착착 수행하며 하루를 때우는 것인지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과 알 수 없음과 어떤 야릇함을 느끼며 이 시기, 그러니까 시간과 장소를 사용하고 있다. 마음속엔 이미 이민자의 어떤 것들이 자리하고 있는건지도. 가까운 몇 년이 될 수도 있겠고 어쩌면 십년이나 이십년 후 일수도 있겠지만 한국을 떠나게 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워 할 것들은 이미 다 누렸거나 혹은 곁에 두고도 그리워 하고 있으니. 떠나게 된다면 보아야 할 얼굴들은 하나도 빠뜨림없이 다 보고 떠나고 싶다. 

 

 

한겨울밤의 이민 드립 마침.

 

 

* 빠짐없이 다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