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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수정과 함께

 

△ 나의 섬세한 취향을 대놓고 건드리는 대표님의 센스.

 

 

 

 

면접날, 팀장님이 시퍼렇게 차가운 수정과를 내주셔서 좋았다. 선배가 나에게 그토록 입사 권유를 할때도, 냉장고를 활짝 열어 사진 찍어 보내주지 않았던가. (이래서 직원 복지는 중요하다!) 냉장고 앞에서 냉정하려 애썼지만, 냉정의 부문에서는 냉장고가 나보다 한수 위. 끝내 냉정하지 못했던 나는 입사 첫날부터 냉장고 앞에 무릎을 꿇고 수정과의 노예가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무릎을 꿇는다. (수정과가 맨 아래칸에 있거든.)

 

 

마실 것을 무척 좋아해 까페에 가면 누구보다 제일 빨리 마시고, 온갖 즙이란 즙은 다 좋아하는 나에게도 유독 어여뻐하는 음료가 있다. 바로 수정과. 이상하게 어머니와 나는 식취향이 삐딱선을 타는지, 내가 몹시 뚜렷하게 좋아하는 것들은 알고보면 어머니가 일평생 입에도 안댈 정도로 싫어하는 것들. 걸죽하게 끓여내 숟가락으로 뜨기조차 뻑뻑한 호박범벅이나 두유도 집 밖에서 접하고는 '왜 우리엄마는 이걸 한번도 안해줬을까!' 라며 원망의 눈물을 뚝뚝흘리지 않았던가. 수정과도 그 중 하나. 어머니는 여름이면 집 안의 모든 쌀로 감주를 빚을 작정인지, 그렇게나 많은 감주를 담는다. 감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밥풀만 삭 가라앉히고 맑은 물만 떠먹다가는, 두 눈이 뜨악하는 강렬한 등짝 스매싱과 입안으로 들어오는 큰 숟가락 하나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크악! 우웁! 

 

 

물론 어머니에게 '감주말고 수정과'를 요청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늘 어머니는 '수정과는 만들기가 어렵다'는 애매한 대답을 남기고는 수정과보다 몇 곱절은 어려울 감주 만들기를 척척 해내고 계시니. 아쉬운대로 결혼식 부페에 갈 때마다 수정과 앞에서 진을 쳤으나 그것도 영 마뜩찮다. 더 깊게, 더 많이, 더 오래 먹고 싶단 말이다!

 

 

잣이 동동 띄워진 핸드메이드가 아닌, 인스턴트라는게 걸리기는 하지만 하루종일 수정과를 마실 수 있다. 전통을 헤아려 담았다는데, 뭐 얼마나 헤아렸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더 많이, 더 오래 먹고싶은 내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 셈이다. 그나저나 요즘 너무 수정과를 많이 먹었는지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미 컵에 얼음을 태우고는 수정과 하나를 꺼내 만지작 거리는 중. 여름은 수정과 함께, 수정과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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