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9일 계속
2년 전 오늘, 나는 대만에 있었다. 오늘밤 잡힌 송년회가 아니었으면 밤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가려고 했으니, 해마다 겨울 이맘때면 나는 어디론가 떠나는구나. 햇수로만 따져보면 2014년엔 대만에 있었고, 2015년엔 제주도랑 태국을 다녀왔고, 2016년엔 중국 땅을 거의 10년만에 다시 디뎠고, 2017년엔 베트남에 있을거니까. 그리고 중순엔 스페인도 갈꺼니까. 그러네. 나 잘 나가네.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동남아와 중국은 마무리하고 차차 유럽을 뚫어보겠어. 예전에 영국 갔을 때, 중국인 친구랑 싸우고 혼자 런던에 도착해서 막 돌아다닌거지만 정말 좋았단 말이죠. 그림도 실컷보고 잘생긴 사람들이 막 잘해줘.
한달 반 동안 하루에 꼬박 3시간을 만원 버스타고 왔다갔다 하던 출근길도 이젠 안녕. 어찌나 고되고 힘들었는지 고 3때도 안 잡히던 입술 물집이 세 개나 잡힐 정도였으니까. 오늘 출근길은 그래서 괜히 여유롭다. 마지막 날까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긴 힘드니, 아보카도 김밥을 싸서 봉지에 넣어왔다. 그래요, 저는 좀 철저한 사람입니다. 내일 점심은 반캔 남은 스팸과 파프리카로 해결하고 여행가방 싸려고 했는데, 마침 고등학교 친구가 대구에서 서울로 놀러왔다고 조금 전에 연락이 왔다. 새로운게 필요하다고 예쁘고 맛있는 곳 있으면 데려가달라는 말을 하기에, 갑자기 너무 많은 곳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이것저것 말했더니 나에게 진지하게 비행기 취소하고 자기랑 있자고.
/ 한식 어때? 내가 되게 좋아하는 곳이야!
/ 아, 티벳 음식 파는 곳도 있는데 티벳 음식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식당 중에 멕시코 식당도 있어!
/ 채식 식당은 어때? 내가 예전부터 진짜 가보고 싶었던 데가 있거든!
오늘 밤에 송년회 마치고 내일 가방 싸려면 빠듯할텐데, 아직 환전도 안 했는데 신이 나서 친구에게 식당 이곳저곳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평화가 깃든 밥상>. 동네에 생긴지 벌써 1년 쯤 됐을텐데,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더랬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내 친구와 가기에 딱 어울릴만한 곳인 것 같아서 예약하려 찾아보니, 마침 매주 금요일에만 영업을 한다잖는지 뭔가! 이건 운명이지 뭔가! 전화로 예약까지 마치고 나니 오랜만에 만날 얼굴에 벌써 기분이 좋다.
어제 저녁에 예나 선생님이 '선물주신 티켓으로 남편이랑 공연보러 왔어요. 고마워요.' 하고 연락이 와서, 혼자 포장마차에서 순대를 찍어먹으며 - 간만 달라는 말을 깜빡해서 온갖 이상한 것들이 순대보다 더 가득 담긴 - 빙긋 웃었더랬다. 내일은 친구가 남편이랑 새벽 기차타고 서울에 놀러온대서 - 왜 대구 여자들은 연말에 다 서울로 오는거지? - 일찌감치 뮤지컬 티켓도 보내줬고 서울에서 둘이 길 잃어버리고 찔찔 울까봐 근처 맛있는 식당도 찍어줬다. 지난번 엄마가 오셨을 때 짰던 일정표도 참고하라고 건네줬고. 아, 친절해.
△ 전 순대를 먹으러 왔는데.
수고했어, 올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