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둥이 2016. 12. 22. 16:22




엄마는 나와 함께하는 여행을 늘 꿈꿨던 것 같다. '너랑 가고 싶다' 는 말을 자주 했으니까. 빡빡하게 계획짜기가 싫고 귀찮아서 - 이럴때는 제주도 갈 때도 A4 30장 계획표를 짜는 쌍둥이자리 친구와 가면 딱일거다. 심지어 계획 짜는 걸 좋아하고 있으니! - 덥석 비행기에 몸을 실을 뿐인데, 당신 보기엔 그게 꽤 재미있고 좋아보였나보다. 베트남 이야기를 몇 번 꺼내다가 이번에 갈거라는 말을 했더니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베트남 별로고 더럽고 볼 것도 없고...' 라는 말을 연거푸 하신다. 한두번 들을 때는 그저 그러려니 싶었는데 자꾸 가기도 전에 초를 팍팍. 


/ 아 도대체 베트남 누구랑 갔다온거야?

/ 여행사 끼고 갔다왔다. 바쁘고 볼 것도 없고...

/ 자기가 재미없는데만 골라서 갔다왔구만. 

/ 그렇제? 


진실은 엄마 친구 다섯명이서 급하게 여행사를 끼고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다녀왔는데, 돈은 돈대로 주고 겉핥기 식의 3박 4일 일정이라 그게 몹시 속이 상했단거다. 



어렸을 때 엄마가 어린 나를 붙들고 '너 크면 엄마를 꼭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태워줘야 한다' 는 말을 했었다. 언젠가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우리집은 좀 암울했다. 시베리아가 뭔지, 횡단열차는 또 뭔지 알 턱이 없는 어린 다섯살이지만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고개를 족히 백번도 끄덕일 수 있는 착한 첫째 딸. 그때의 엄마는 그저 저 멀리 가본 적도 없는, 어느 책에서나 읽은, 줄곧 눈 속에 파묻혀 눈 속을 달리는 기차를 상상하면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을거다. 장농 안에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있는 엄마의 짐가방이 한켠에 얌전히 놓여있었고. 엄마가 그걸 몇 번 움켜쥔 적도 있다. 


어둡고 우울하던 그 때에 동네의 한 노파가 엄마에게 '당신 마흔이 지나면 인생이 활짝 필거다' 라는 말을 했단다. 새파란 새댁이 듣기에 마흔이란 너무나 멀고, 또 아득한 미래이지 않았을까. 마치 시베리아처럼. 엄마는 힘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줄곧 마흔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엄마가 마흔이 되면서, 우리집은 뭔가가 좀 달라졌다. 엄마는 갑자기 비행기 탈 일이 생기곤 해서 많지는 않지만, 그리 적지도 않은 여러 나라를 다녀왔다. 나 들으라는 소리인지 뭔지 어쨌든 들을 때마다 조금은 뜨끔하고 따끔한 '누구 형님네 딸내미들은 셋 다 대기업에 다니는데, 철마다 엄마를 해외여행 보내주고 호텔에서 재워준다' 는 말에 조금은 덜 미안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무튼 나도 어른이 되었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는 시베리아가 트롤이 사는 전설의 어느 나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알고, 시베리아가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보지도 않았던가. 고맙다는 뜻의 '시바쓰바'에 유난히 센 억양을 실으면서 말이다. 시간이 또 언제 생기겠는가. 나는 엄마를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태운 뒤 일주일 내내 컵라면을 대접할 계획을 품기도 했다. 


/ 어무이, 시베리아 갈래? 일주일 내내 기차에 짱박혀서 컵라면 먹어봐야지 다시는 가고 싶단 소리 안하지.

/ 시베리아?


둘 중 누구도 간절하지는 않아서, 러시아 철도청을 실눈으로 뒤적여보던 나는 꼬부랑 글씨에 질려 이내 덮어버렸다. 엄마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 '우리 시베리아 어떻게 됐노?' 한마디만 하시고 더는 물어보지 않았고, 갑자기 차선책으로 등장한 것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에 가려고 이미 적금도 붓고 계셨단다. 그러셨군요, 어머니. 


7월 어느 때에 출발해서 언제 돌아와야한다는 날짜까지 콕 집어주시면서, 스페인 인 프랑스 아웃이고, 어디어디어디를 볼꺼라고 줄줄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시베리아는 좀 더 먼 훗날이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스페인이라. 엄마는 일찌감치 나를 A+++가이드로 명명하고 기대를 불어넣고 있다. 유럽은 한 번 밖에 안가봤는데, 그것도 내 맘대로 돌아다닌 게 전부인데.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