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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

우주둥이 2016. 12. 2. 19:39

책상을 뒤로 하고 사무실 문을 디밀고 나오면, 그제서야 밀렸던 가슴이 쿵쾅댄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나서 가쁜 숨을 몰아 쉬는 것처럼. 일에 밀려 나도 모르게 꾹 눌러왔던 감정과 스트레스가 숨을 헐떡이며 살아나는 것이다. 나 여기있어, 하고.

놀랍게도 금요일 저녁의 도로는 한산하다. 다들 한잔 걸치기라도 하는건지, 평일의 여느 때보다 버스가 제일 신나게 달리는 중.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몹시도 쿵.쿵.쿵.쿵.대는 나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물끄러미 창밖을 본다. 왜 이렇게 쿵쾅대는걸까, 생각하면서.

내 삶에 침묵의 여분이 많았으면, 하고 바란다.  한 해, 한 해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쩐지 나는 좀 더 절대적으로 고요가 필요함을 느낀다. 침묵의 적정 필요량이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좋은 회사원이 될 수는 없다. 회사원은 침묵할 수 없고, 좋은 회사원은 침묵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회사원은 못 될 것이다.

출근. 버스에서의 1시간 30분. 서서 갈 때도 있고 앉아서 갈 때도 있다. 서서 갈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앉아서 갈 때는 글을 쓴다. 출근 시간에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 (그렇지 않으면 90분을 밀리는 도로에서 보낸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출근하면 메신저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한다. 전화를 하고, 또 받고 지시사항을 처리한다. 어제는 너무 바빠서 점심을 걸렀다. 저녁에 밥을 먹으려니 속이 쓰리다. 거래처 담당자와 연애하듯 - 아니, 연애도 이렇게 해 본 적은 없는데 - 하루에 많게는 서른 번도 넘는 통화를 하고, 이메일을 수시로 주고 받는다.

문서를 작성하고, SNS를 관리하고, 끊임없이 일을 처리하는 동시에 일이 피어나는 과정을 본다.

오늘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 내일도 밀린 일을 처리하러 출근할 예정. 지금 이 경험이 내게 주는 의미는 뭘까. 누가 그랬지? 우리 생엔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다고. 그저 즐겁게 지내면 그만일 뿐이라고.

좋은 회사원이 되기는 좀 힘들 것 같은 나는, 회사 속에서 즐거움을 도모하거나 회사 밖에서 즐거워야 할텐데. 회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곰곰 재정립해보는 시기이기도 하겠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쨌든 힘을 내보... 아니.
놀고 먹는 내 삶을 위하여!
수고했어, 오늘도.

(+) 내가 좋은 학생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학교 가는 걸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공부가 재밌었어요. 수학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