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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을 불끈, 보내는 법
우주둥이
2016. 11. 19. 00:09
내가 가는 곳엔 늘 책이 그림자처럼 피어있습니다. 이사때마다 책 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면서도, 몇 페이지 읽고는 이내 처박아 두면서도 끊임없이 책을 삽니다. 책을 안 사는 삶은 진즉에 포기해버렸습니다.
오늘 저녁, 동네에서 아는 초딩을 만났는데 바쁘게 집으로 가더군요. 늘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며, 이어령 책을 읽는다는, 어릴때 영국에 살다와서 영어도 곧잘하는 귀여운 열한살 입니다.
/ 어디가!
/ 불금이잖아요.
/ 뭐하는데?
/ TV볼꺼예요. 삼시세끼.
/ 언니는 TV 없는데.
/ 와, 불쌍하다. 난 오늘 떡볶이도 먹었는데.
TV도 없는 불쌍한 언니도 가끔 춤추러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막상 클럽에 발 디밀면 후회합니다. 음악은 너무 시끄럽고 (조용한걸 좋아하거든요) 담배연기에 숨이 막히고 (담배냄새에 취약합니다) 무엇보다 몸치니까요. (나도 스테이지에 올라가서 봉춤추고 싶습니다)
나의 온전한 금요일은 집으로 돌아온 저녁, 새 책과 함께 시작합니다. 새 책을 펼쳐놓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기타를 치거나 들큼한 것들을 아주 많이,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먹어치웁니다. 내가 참 심심한 금요일 사람입니다. 심심한게 싫으면 진즉 그만뒀을텐데, 나름 심심한게 좋은가봐요.
아참, 오늘 우연히 구글 드라이브를 보다가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게 작년 이맘때의 흔적 몇 장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온통 '좋아한다'는 말을 쏟아놓았더군요. 나는 그 말을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누군가는 이제 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즉에 그리 되었습니다.
아주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로 가는걸까? 하는 여자아이의 물음에 남자아이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공기 중을 떠다니다가 내게로 들어오는거라고. 본디 내것이 아닌거라고.
앗, 글을 쓰다보니 벌써 토요일. 불금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