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머리
좋아하면 울리는
우주둥이
2016. 10. 20. 19:52
지난 달이었나요, 같은 회사에 다니던 나이 지긋한 상사 한 분이 퇴사를 했습니다. 십 년이나 다녔다고 하시더군요. 길고 긴 송별회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그 밤, 자전거 위에 몸을 실은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그 분에게 특별한 마음이 있다거나 친분이 있는 건 전혀 아니었어요. 부서도 달랐고, 한 달에 말 한번 섞지 않을 때가 많았으니까. 그저 그 날 밤에 내내 마이크를 쥐고 있던 그 모습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힘없는 등이 아팠습니다. 뭐랄까, 두꺼운 코트의 첫 단추를 잘 끼워보려고 겨울 내내 첫 단추만 채우고 끄르고를 반복하다 힘없이 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겨울 내도록 추위에 떨며 단추를 채워보려 곱은 손으로 안간힘을 썼는데, 따뜻한 온기 속에 한번 와락 안기지도 못했는데 그저 봄이 와버렸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어쩌면 상상이 지나친 것 알고 있어요. 그저 취한 등에서 실은 내 모습을 봤겠지요. 나의 등으로 말하자면 늘 땀으로 젖어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오면 등이 온통 젖어있어요.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이면 좋을텐데, 그저 열을 내느라 그런 겁니다. 뭔가를 바쁘게 해내느라, 할 일이 쓰인 목록들에 쫓기느라 그렇게 열을 내고 있습니다. 첫 단추만 내내 채우고 끄르고를 반복하는 사람처럼요.
몇년 전에 선배에게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 별로 맘이 가진 않는데, 한 번 만나볼까요?
/ 안 좋아하는 사람이랑 연애를 왜 하냐! 미친.
그러게요. 안 좋아하는 사람이랑 좋아서 죽는 연애를 하는건 그렇게나 힘이 들텐데, 그걸 빤하게 알면서도 '좋아해 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 내 꼴이 참 우습고 또 딱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골라먹는 배스킨라빈스가 아니니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며칠 전, 긴긴 고민 끝에 겨우 '그만 두겠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상사분이 따듯하게 말해주셨어요. 누가봐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내 모습이었을테니까. 저를 뽑은 이유는 반짝거리는 모습이 좋아서였는데 그 지금은 그 때의 모습이 전혀 아니라고요. 자주 나의 눈물을 받아준 작은 화장실이지만, 오늘만큼 많이 울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사실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아니길 간절히 바랬을 뿐이죠. 내 옆엔 모든게 완벽한 남자가 있는데, 왠지 이유도 없이 자꾸 끌리는 저 앞의 남자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성호를 오천번이나 긋는 여자의 마음이랄까요.
/오, 주여! 제발 저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아멘!
눈물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와서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좋아하는' 이라는 말을 천천히 오래 씹으면서. 좋아하는, 좋아하는, 좋아하는.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좋아하고 싶어요.
잘 좋아하고 싶어요.
아멘.
※ <좋아하면 울리는>은 천계영 작가의 웹툰에서 빌려왔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