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4일 : 텅 빈 거리에서
서울이 텅 비었다. 가려던 식당도, 좋아하는 까페도 문을 닫았다. 상수역 인근을 어슬렁 거리다가 문을 연 작은 까페가 있어 들어가보니 헌책과 커피를 함께 판단다. 볼만한 책은 썩 없었지만 빼곡히 꽂힌 헌책이 왠지 기분 좋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헌책방' 다운 느낌이랄까. 헌책방의 많은 지분을 번듯하고 깔끔한 중고서점이 차지하면서 - 그것도 전국구로! - 본래의 헌책방도 자취를 감춘지 오래이다. 헌책방에서 파는 헌책과 중고서점에서 파는 중고책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걸까. 깔끔한 진열대? 훌륭한 검색엔진? 구매에 따라 적립되는 포인트?
국어사전을 뒤적여 '헌'의 의미를 찾아보면 '오래되어 성하지 아니하고 낡은' 이라는 뜻을 가진다. 과연 '중고'와는 다르다. 알라딘에서 전국구로 운영하는 중고서점은 - 심지어 나는 지난해 알라딘에서 일백권 이상의 중고책을 사들였으며, 서울시 마포구 상위 0.1%의 구매순위를 기록했다. 별 관심도 없었는데 연말이 되자 알라딘에서 친절한 통계를 내줬다. - '헌'책은 받아주지 않는다. '오래되어 성하지 아니하고 낡은' 등급에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 중고서점에 진열되기 위한 여러가지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들을 하나둘 통과하노라면 분명히 헌책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희미하던 예의 헌책방들은 이제 '책병원' 정도로 이름을 바꿔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오래되고 성하지 않고 낡아빠진, 한눈에 척 보기에도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 그런 책들의 무덤일 뿐일테니까. (그래도 무덤은 필요하다. 모든 것들에게. 심지어 후회와 안타까움에게도.)
낮은 천장을 머리에 이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맞은편과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면서 텅 빈 오후를 흘려보냈다. 갸날픈 까페 주인이 서비스로 커피를 내줬다. 마실 줄 모르지만 받아들고 고맙다고 말하며 '명절인데 영업하시냐' 하고 물었더니, 딱히 어디 갈데가 없다는 대답. 딱히 어디 갈데가 없는 이들의 많은 발걸음이 까페 문을 딸랑 디밀었다가 또 흩어진다. 어쩌면 '헌' 사람들이 명절을 피해 작은 까페에 모여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옹기종기 비를 피하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