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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속에 밥

우주둥이 2016. 3. 10. 19:51

퇴근을 한시간여 남겨두곤 여직원 몇몇이 빵을 사먹기에 '흠, 역시 여자들이 살찌는건 이유가 있어.' 라고 생각했건만 나 역시 퇴근 후에 들리는건 빵집이다. 식빵이나 좀 사려했다만 20%할인이란 문구에 눈이 뒤집혀 커다란 원기둥을 안고 나왔다. 원기둥 모양의 두툼한 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원기둥의 부피를 구하려 애쓴다. 원넓이는 어떻게 구하는거였더라. 파이... 제기랄,주입식 교육. 그래 니놈이 이겼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빵기둥의 부피를 구하고 있다.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주입식, 이 나쁜놈. 길에서 뭘 먹는걸 싫어하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빈속에 밥 먼저 먹으면 좀 그러니까~' 하면서 원기둥의 부피를 내 위장으로 옮겨갔다. 빈속에 밥을 먹지, 뭔속에 밥을 먹나. 누가 빈속의 정의 좀. 아무튼 처음엔 귀퉁이만 좀 뜯어먹고 원뿔의 형태로 아름답게 남겨둘 생각이었으나, 생각이 왜 생각인가. 어느새 그 커다란 원기둥이 사라졌다.

3차원 원기둥이 장렬하게 바닥만 남긴 2차원이 되었을 때쯤 집앞에 도착했는데, 나는 우와! 소리를 질렀다. 귀퉁이만 길다랗게 남은 달이 내셔널지오그래피 싸다구를 후려갈길만큼 멋지게 걸려있었다. 국산의 힘! 미제만 예쁜게 아니었어. 나는 놀란 마음에 집으로 달려들어가 몇년동안 박아두고 한번도 안꺼내본 구형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밤이 되어 쌀쌀했는데 티셔츠만 덜렁 입은, 어쩌면 입가에 빵가루 범벅일 여자가 카메라를 메고 쫓아나오다니 이쯤되면 건물앞에 송중기는 있어줘야 하는데. 나의 득달같은 모습을 보고 건물 입구의 꼬마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갑자기 달에 대고 휘파람을 불었다. 멋있는 척 하고 싶었나. 추워죽겠는데 덜덜 떨다가 저거 하나 찍고 꼬맹이가 사라지길 기다려 다시 쏙 들어왔다. 아, 정말 멋진 달이 걸려있는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어느 대표님의 히트친 토로처럼, 기깔나게 아름다운데 담을 방법이 없다. 밥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