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봄이 주는 선물

우주둥이 2016. 3. 9. 16:09

 

△ 봄, 팡!

 

 

 

두달을 꼬박 마음을 앓았다. 사실 되게 되게 되게 아픈거였는데,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아픈 무게를 가늠할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또 짓눌려 버릴 것 같기도 해서 애써 모른척 했다. 모른척 한다는 사실도 열심히 모른척 했다. 시선을 자꾸 외부로 돌렸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이 없어도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영화를 보고 많은 책을 읽었다. 

 

 

처음에 나의 분노는 외부를 향해 있었다. 어차피 외부는 아무 대답도 나에게 줄 수가 없지 않는가. 시간과 공간은 묵묵부답일 뿐이다. 늘 그 자리에 있지도 않고. 외부를 향한 잠깐의 날카로운 창 끝이 금세 나에게 돌아온다.  왜 그 회사를 선택했을까? 왜 그런 사람 말을 믿었을까? 왜 나는 아직도 이모양일까? 왜 ? 왜 ? 왜 ? 

 

 

걷다가도 문득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정말로!) 누가보면 딱 실연당한 여자꼴로 비실비실 걸었다. 늘 누구에게나 섬세하고, 혹은 따끔한 조언을 잘 주던 나였는데 그 조언들은 모두 사실 나에게 필요한 것 아니었나. 남에게 건네던 그 조언들, 한번이라도 내가 성실하게 실천해본 적 있던가. 온갖 물음표가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고 나는 늘 잠을 잘 못 잤다.

 

 

나는 늘 비틀비틀비틀려왔다. 비틀려 걷는 것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담보는 있었다. '몇 살쯤이 되면' 그때는 비틀리지 않겠지, 이렇게 흔들려도 그때는 모든 것이 안정적이겠지. 적어도 내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은 있겠지. 그 때는 뭐라도 되있겠지, 설마.

 

 

그 설마가 이미 지났는데 나는 어쩌면 길에 처음 발을 내딛던 그때보다 더 못하다는 심정이 치고 올라오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는 담보가 있었다. 이제는 그 담보가 마음의 빚이 되엇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다'는 나의 눈물어린 하소연에 한 언니가 말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게 어딨어. 시간은 그냥 흐르는거지.' 따끔했고 뜨끔했다.

 

 

*

 

 

오늘 문득 길가에 세워진 차창에 내 모습을 확인하려 들여다보는데, 내 모습 뒤로 아뿔싸. 목련이 팡! 만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매년 봄은 새로운 시작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그 새로운 시작에 발맞추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고 아쉬워서 늘 계절이 건네는 인사를 모른척 했지만 아 글쎄, 봄은 너무나 아름다우니까 모른척 할수가 있나. 예쁜 것들 앞에서 나는 와르르 무너질 수 밖에.

 

 

늘 똑같은 봄이지만 늘 새로운 시작이다.

하늘에 박힌 목련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누군가에게 메세지가 왔다.

 

'뭐하세요?'

'하늘 보는데요.'

'역시 멋지네요.'

 

 

목련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역시'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역시, 멋지다라. 나 누군가들에게는 언제나 줄곧 멋진 사람이겠구나. 목련이 아무 준비없이 팡! 하고 피어나면 '역시 예쁘구나.' 하는 것처럼.

 

 

목련의 시간은 난 잘 모른다.

그러나 목련은 나처럼 비겁하진 않았겠지.

언젠가 따듯해질꺼니까, 하면서 봄의 도래를 모른척 하지 않았겠지. 열심히 준비해왔겠지. 어두운 땅 속에서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살면서 우리는 몇번의 벚꽃을 만나게 될까. 많아야 백번.

이 말을 열 일고여덟 무렵에 일기장에 써두었다. 그때는 내 봄이 많이 남은 줄 알았다.

 

 

목련을 보고 들어오는데

문득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울지 않아야지.

정말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