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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5일 : 멱살과 초밥

우주둥이 2015. 11. 16. 22:38

 

 

 

 

 

 

 

나의 생활에서 주말과 잉여로움을 담당하고 있던 친구 둘이 동시에 연애를 시작하는 바람에, 나는 주말마다 고독해졌다. 주말에 먼저 연락하기도 머쓱해졌다. 십중팔구 '오빠야'나 '자기야'랑 있을텐데 뭐하러 전화를 한단말인가! 가끔 친구집에 TV보러가고 싶은데 - TV가 겁나 짱 좋다 - 그것도 못하게 됐단 말이지. 툴툴. 나의 툴툴거림을 들었는지 둘 중 하나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기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맛있는 초밥집 데려간다더니 그게 언제냐!'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오늘 비가 이렇게 질기게 내리는데도 초밥 포장해서 집까지 대령하셨다. 으하!

 

 

초밥을 미어터져라 볼따구에 집어넣는 나의 맞은편에 앉아 친구는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 그러니까 주말마다 꼬박꼬박 보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선물도 자주 사주고...

/ 자랑하러 왔냐아아아아앙

/ 아 이거 볼래? 빼빼로데이때 받은건데

/ 자랑하러 왔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 (초밥이 맛있어서 참는다)

/ 근데 왜 손을 안잡지?

 

 

친구의 고민은 벌써 만난지 두달이 되어가는 썸남이 손을 안잡는다는 것. 매일매일 꼬박 한시간씩 통화하고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는데 손잡을 낌새가 안보인다는 거다.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핸드백이 벽인가 싶어, 심지어 어느날은 아예 백팩을 매고 가서 양손을 자유롭게 풀어놨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솔루션은 하나뿐이겠지. 아쉬운 놈이 우물파는거니까.

 

 

/ 니가 손금 봐준다 그래.

/ 내가 꼭 이 나이에 남자 손금까지 봐주면서 손 잡아야겠냐!!!!

/ 그럼 술먹고 잡아. 박력 째지는 여자가 되어보렴.

 

 

결국 다음주 썸남의 생일을 디데이로 정하고 친구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 썸남한테 자꾸 전화가 와서 친구가 이중인격을 장착하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통에, 나는 초밥을 먹다말고 친구의 멱살을 잡았다. 후식 과자선물 안줬으면 세게 잡았을 수도 있다. 연애는 집에 가서 하라고!! 실컷 고민을 털어놓던 친구야가 미안했는지 창문을 꼭꼭 닫아주며 잠그고 자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바래다주러 1층까지 쫓아내려간 내 잠옷의 주머니가 터진걸 보고는 또 한소리를 한다. 바느질 못한다고 하니 다음에 실바늘 가져와서 꿰매 주겠다고. 친구를 보내고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렇게 빗소리가 좋은데 어떻게 이걸 안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