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다섯. 모서리는 의미없이 둥글어져서는 안 된다
많은 것이 좋은 시절이 있었다. 많은 것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싼 것이 좋은 것이었고 큰 것이 좋은 것이었고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이었고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른 것이 살진 것보다 더 좋다고 하고 큰 것보다 작은 것이 더 좋다고 하고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밥도 많이 먹는 것보다 적게 먹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적게 먹어야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들 한다.
많아져서 더 좋아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려면 잠을 더 많이 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일도 그렇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쉬고 더 천천히 움직이면서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더 크게 성공한다고 한다. 일과 공부는 적게 하고 잠과 생각은 더 많이 하는 것이 더 좋은 세상이 되었다.
시집은 어떨까? 시집 한 권을 넘기면 백여 편의 시가 나타난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저 시를 읽어야 한다. 절망에 관한 시를 읽고 환희에 관한 시를 읽어야 한다. 첫 시와 두 번째 시 위에 다시 세 번째 시가 쌓인다. 네 번째 시를 읽고, 그렇게 계속 책장을 넘기면 시는 시와 부딪치고 모서리는 둥글어진다.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고독은 너무 쉽게 위로받는다. 검은 것도 없고 흰 것도 없는 재만 남는다. 아직 타 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상처 입기 전에 상처는 아물고 헤어지기도 전에 다시 만나면서 시는 평평해진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평평한 것일까? 시인의 경험은 그렇게 주마간산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시는 그냥 말일까?
한 개의 단어는 한 줄의 문장이다. 한 편의 시는 세계의 하루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이 점점 더 그렇게 보이려고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하루는 언제나 하루일 뿐, 결코 이틀이나 사흘이 아니다. 한 번에 시 두 편을 읽는 것은 하루에 이틀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인간은 하루에 이틀을 살 수는 없다. 그럴 것이라 생각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맹세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하루의 낮을 살고 나면 하루의 잠을 자야 한다. 긴 잠이 끝난 뒤에야 다음 날을 살 수 있다. 밤이 없이 맞는 아침은 아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집에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를 읽고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와 저 시를 꼬리 물게 하는 시집은 시를 잃는 시집이다. 그곳에는 시는 있고 시간은 없다. 시는 있고 사유가 없다. 시는 있고 마음은 없다. 그런 시집에 시는 없다.
종이를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왜 수많은 쪽을 비워 두었는가? 시는 시 아닌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가 있고 독자의 시가 있다. 시인의 시는 인쇄되어 보여주고 독자의 시는 빈 종이 위에 쓰여진다. 시인의 시가 씨앗이 되어 독자의 시를 틔운다. 독자의 시는 시인의 시를 꽃피운다. 열매는 그러고 나서야 익기 시작한다. 빈 종이를 빠르게 넘기지 말기 바란다. 계산의 속도는 빠르지만 몽상의 속도는 느리다. 계산은 한 방향으로 총알처럼 달려가지만 사유는 천지사방으로 향기처럼 퍼진다. 종이가 비었다고 그곳에 당신의 글자를 꼭 적어 놓아야 할 필요는 없다. 시 한 편을 읽었으니 시 한 편을 써야 할 의무는 독자의 것이 아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졸리면 눈을 감고 무거우면 책을 내려놓자. 시집 한 권이 손에 들어왔다고 그것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저 시와 함께 있는 것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그저 빈 종이를 바라보는 것으로 부족하지 않다. 충분할 필요는 없다. 부족하지 않으면 불행하지 않다. 적은 것이 좋은 시절이 되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주식회사 편집부 / 동시, 그리고 백지의 시간
<동시>에서 발췌
* 열아홉에 나도 첫사랑을 앓았다. 그와 나눈 이런 저런 얘기들의 대부분을 잘 기억할 수 없지만 '책을 사느니 밥을 한 끼 먹겠다' 라는 그 목소리를 아직 또렷이 기억한다. 아무래도 읽지도 않을 책을 자꾸만 사버릇 하는 날두고 한 얘기이리라. '난 밥을 굶어도 책을 살래요.' 라고 대답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밥과 책의 무게가 똑같은지 알 수 없었다. 와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나중에 알았다. 살면서 차츰 알았다. 한 끼 밥의 무게를. 한 끼 밥과 한 줄의 문장이 비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한 끼밥은 우주의 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살면서 제일 마음에 소중하게 품은 것이 문장들이리라. 아름다운 문장들. 나를 관통하는 문장들. 푹 하고 나를 일격에 뚫고 들어와 단숨에 나를 다 찢어버리는 문장들.
서점에서 <동시>라는 책을 봤다. 작달만한 판형에 아름다운 꽃그림이 그려져있었다. 눈길을 금세 거두어버렸다. 책장마다 시가 빼곡해 시와 시가 부딪치다가 모서리가 이미 둥근 책일줄 알았다. 여느 책이 그렇듯이. 그 책을 현진이 샀다. 너무 좋다고. 빌려 읽다가 마음이 그만 뻐근해져서 시집을 내 가까이 두었다. 좋은 책은 가까이 둔다. 자주 들여다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곁에 가앉고 싶은 마음으로 곁에 둔다. 그저 가까이 있고 싶다.
오늘도 책 겉표지를 어루만지고 몇 편의 시를 읽다가 문득 맨 뒷장을 넘겼다. 나는 자주 책의 맨 뒷장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한장의 편집 후기가 있다. 읽다가 그만 마음이 아득해서 그대로 옮겨본다. 한 글자, 한 문장을 자판으로 꾹꾹 눌러 그대로 베껴본다. 유독 왜 이 책의 시들이 내 마음에 들어쳤는지 그 이유도 이제 알겠다. (열심히 해야해요, 잘 해야하고. 멀리사는 이가 버릇처럼 되뇌이는 말도 되새겨본다. 열심히 살고, 잘 쓰고 싶다. 그게 안 되면 잘 살고, 열심히 쓰던가.)
'열매는 그러고나서야 익기 시작한다'
그러니 우리는 의미있는 모서리가 되자. 너른 마음의 여백을 품고 시간을 품고 여전히 모서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