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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무리는 무리데쓰


주말 출근이다. 싫은 마음을 한가득 안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지하철이 참 안 온다. ('더럽 게'라고 썼다가 '참'으로 고쳐 썼다.) 늦게 오는 주 제에 몇 대는 또 그냥 역을 통과해버려서 오랜 기 다림 끝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평일은 옆구리 터지기 일보 직전의 김밥에 올라탄 밥풀의 심정이었는데, 밥풀들이 죄다 김밥에서 내려버린 토요일 오후의 지하철 안은 제법 한산하다. 알록달록 눈이 아 픈 등산복을 갖춰 입은 아주머니 무리들과 이 더운  폭염에도 용감하게 나들이를 감행하는 가족들이 보인다.  

회사를 관두기 무섭게, 계획에도 없이 올해 3월부 터 급작스레 새로운 회사를 다니게 되었으니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을 손꼽아봐도 어림 백 번은 족히  넘게 매일 같은 시각에, 매일 같은 역에서, 되도록 이면 같은 플랫폼의 위치를 고수하며 (환승이 편하니까) 출퇴근을 반복해왔다. 

그런데 오늘 주말 출근은 몇 번이나 출근길을 헤맸다. 믿을 수 없게도. 환승역에는 제대로 내렸는데,  환승 노선을 아무래도 찾을 수 없는 거다. 희한하다. 늘 이 역에서 환승했는데. 마치 해리 포터의 눈에 만 보이는 9와 3/4 정거장처럼, 환승 노선은 평일의 밥풀에게만 보이는 걸까. 몇 번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맞게 내렸는지 지하철역을 확인하고, 또  헤맨 끝에 간신히 환승 노선을 발견해 지하철에 올라탔다. 

출근길의 지하철은 늘 정신이 없다. 5분, 10분 차이로 지각이냐 아니냐가 판가름 나기 때문에 다들 참  열심히 뛴다. 번쩍번쩍한 대리석을 잠에서 덜 깨 풀리지도 않은 다리로 달음박질치니 무릎이 상하기  딱 좋겠지만 어쩔 수 있나. 내일은 10분 일찍 나와야지, 다짐하지만 그 다짐을 10년째 하고 있는 걸  뭐. 

우르르 타고 우르르 내려 우르르 함께 달린다. 환승역에서도 늘 그랬다. 다들 환승 통로에 갇히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 간발의 차로 지 하철에 탑승하기 위해 야생의 동물 때처럼 우르르  함께 달렸다. 나도 질세라 달렸다. 달리다 보면 맞 게 환승역에 도착했으니, 모두가 달리는 이 길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모두와 달리던 이  길을 혼자 달리려니, 자꾸만 방향을 잃고 헤맨다.  나는 무리로서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개인으로서는  실패했구나. 무리 속에야 겨우 존재하는 개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 건물 입구에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저 무리 속에서 어떤 개인일까. 잘 달리고 있는 무 리 속의 잘 달리는 개인일까, 잘 달리고 있는 무리  속에서 저 혼자 뒤처지는 개인일까.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모두를 따라 겅중겅중 달리기만 하면 성공- 이래봤자 환승 열차에 바르게 올라타는 것이니, 실은 성공이고 말 것도 없다만- 한 무리 축에는 낄  수 있는데, 회사에서는 그 무리 축에도 못 끼는 개인인 것만 같다. 


무리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본다.

1. 무리 : [명사] 사람이나 짐승, 사물 따위가 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2. 무리 :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 어남.


한 동아리, 아니 한 덩어리가 굴러가는 방향을 끊임없이 의심하거나  그 속도를 좇아가지 못하면 무리에서 무리되는 것이다. 무리를 무리하는 것이다. 무리가 되기 위해 무리하는 나를 돌아다보며, 무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무리를 하는 건 아닌지 미심쩍어하는 나를 들여다보며 '무리는 무리데스' 하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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