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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매일의 얌,채식

잃어버린 맛 : 간신히 잊지 않기를



춘천에 다녀왔습니다. 보수할 새 없이 끊임없이 꺼내쓰느라 닳고 닳아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나를 겨우 추스려 다녀왔습니다. 춘천에 딱히 소회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춘천에 가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춘천이 좋아졌습니다. (마음대로 갖다 붙인 뜻이긴 하지만, 봄 춘에 하늘 천을 쓴다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천도 좋고요. 봄의 하늘, 봄의 개울이 있는 고장.)


춘천은 잊고 있던, 바삐 사느라 잊은지도 몰랐던 많은 것들을 잇게 해준 도시였습니다. 유난히 푸른 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그랬는지, 건물들이 대체로 낮고 사람이 적어 그랬는지 곳곳을 천천히 거닐며 자꾸만 '호젓하다, 한적하다' 라는 감탄이 내 입에서 쏟아졌습니다. 장마로 인해 적당한 습기를 품고 있는 공기와 공간이 결탁해 자꾸만 무언가를 만들어냈는데, 일본 영화의 도입부 같기도하고 어느 무명 사진가의 작품같기도 한, 딱히 특별한 것은 없지만 자꾸만 시선을 뺏기게되는 어떠한 분위기 속에 줄곧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 머무르다보니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이 툭툭 떠올랐습니다. 첫날 저녁에 들렀던 춘천의 30여년 된 경양식 집에서는, 어린 날에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종종 데려가주던 대구시내의 돈까스집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푸른 숲속을 거닐 때는, 문득 어린 날에 그토록 열광했던 찐득한 크림케이크 위의 설탕 장식 맛이 간절하더군요. 요즘은 케이크가 워낙 흔해지고 다양해졌지만 어렸을 땐 누군가의 생일이 아니면 절대 먹을 수 없었던데다가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거든요. 한살 터울의 남동생과 케이크의 위의 알록달록한 설탕 장식을 먹겠다고 싸웠었는데, 사실 별 맛이 없어요. 이가 나갈 정도로 딱딱하고 촛농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촛농을 굳힌 맛과 흡사한 맛이거든요. 그런데도 케이크 위에 딱 하나뿐인 설탕 장식에 온 마음을 다 뺏겨서는. 


둘째 날에는 피아노를 쳤어요. 어느 건물 안에 누구나 칠 수 있게 비치된 피아노가 있어서 마음대로 뚱땅거렸는데 지나던 몇 사람이 슬쩍 말을 붙이며 다가왔어요. '피아노 소리가 좋네요' '저도 한번 쳐볼 수 있을까요' 하고. 어른들은 참 많이 두려워해요. 혼자서 편안하게 뚱땅거리다가 막상 사람들이 다가오니 손가락이 딱 굳어서는 얼른 자리를 비켜줬어요. 자리를 건네받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건반 앞에서 두려워했어요. '아유,배운지 40년이 넘었는데' '저도 잘 못쳐요.' 하고. 피아노 앞에 앉은 어른들이 머쓱해하며 파도처럼 빠져나가자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주아주 오래전에 배운 젓가락행진곡을 연주했습니다. 워낙 간단하기도 했지만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놀랐고 즐거웠어요. 그리고는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찻집으로 가서 대추향이 가득한 차와 셔벗을 먹었습니다. 찻집 한켠에는 바둑판과 바둑돌이 있어서 또 옛날 생각이 났어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줄곧 바둑을 뒀거든요. 지겨워서 금세 알까기로 종목을 변경하기는 했지만. 할아버지의 비좁은 방에서 할아버지와 마주앉아 바둑 혹은 알까기를 하고 있으면, 할머니가 밥을 차려주셨던 것 같아요. 반찬이야 밥솥에 찐 계란찜과 콩잎, 강된장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할머니는 지난 3월, 벚꽃이 예쁘게 활짝 핀 어느 날 돌아가셨고 나는 할머니 생각을 오래 해야지, 다짐하고서는 할머니 생각을 홀랑 다 까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날인 오늘은 조판이라는 것을 해봤어요. 납으로 만든 글자를 하나하나 찾아 판에 심고 잉크를 묻혀 찍었습니다. 옛날엔 정말 이런걸 공부하고 싶었어요. 하루종일 글자를 쌓아놓고 글자와 씨름하고 글자와 사랑에 빠지고 싶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