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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두운 의자 안에서

러빙 빈센트 : 사랑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

△ 영화 <러빙 빈센트> 中

 

자세하게,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일.

사랑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

 

빈센트 반 고흐. 불우한 어린시절, 광기, 정신병력, 가난한 삶, 귀, 권총자살... 그를 따라다니는 고정된 클리셰들. 많은 이들이 고흐를 사랑하지만, 그렇지 않은 누군가들에게는 그저 '광기어린 불우한 천재 예술가' 정도일테다. 나에게도 그랬다. 거의 10년전 영국 여행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유명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제대로 바라볼 생각도 않고 그 앞을 휙 지나쳐버렸다. 시대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완벽한 좋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나이와 수준이 아니었던게지. 그 뒤로 아주 가끔 빈센트에 대한 뮤지컬을 보기도 했고, 책을 들춰보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미치광이 천재 예술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각이었던 듯 하다. 내가 그 시각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점이 더 크지만.

 

<러빙 빈센트>는 내용을 차치하고, 제작과정이나 영상미만으로도 관객들을 충분히 압도하는 작품이다. 제작기간만 10년이 걸린 작품으로, 먼저 필름 촬영을 한 뒤 다시 100여명의 작가들이 2년 반동안 영화에 들어가는 모든 장면을 수작업으로 그린 것이다. 일반 영화는 1초에 24컷의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러빙 빈센트>는 1초당 12장의 그림을 그려 제작했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초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극 중 등장인물로 설정하고 성격을 부여하여,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고흐를 각기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하고 극 중 주인공이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실마리를 푸는 방식으로 극이 흘러간다.

 

누군가는 고흐를 미치광이로, 끔찍한 악마로 바라보고 누군가를 고흐를 성실한 사람, 상냥한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고흐의 다양한 성격들을 바라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고흐가 남긴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캐릭터를 입혀 등장시킨 점이 흥미로왔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 사람, 사물들... 그토록 많은 것을 그토록 아름답게 그토록 성실하게 남길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이유는 오직 사랑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고, 모든 것들에 애정을 쏟아부었던 사람이다.

 

그 자신만 빼고, 라는 문장을 썼다가 지워버렸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야할까. 자신의 귀를 칼로 자르고, (명확하게 검증되진 않았지만) 자신의 배에 총구를 겨누었다고 해서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기 안에 깃든 모든 것을 꺼내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표현하려 애썼던 사람,  

 

분명히 예전에 사둔 게 있을텐데 다시 고흐에 대한 책을 한 권 샀다.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서 내게 많은 울림을 준 작품이고, 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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